"닥치는 대로 아무하고나 토론을 벌여서는 안 되며 자신이 잘 알고 있고 결코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지 않으며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경우 매우 창피하게 여길 만큼 충분히 이성적인 사람하고만 토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권위로 내리 누르지 않고 근거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며 상대방의 합리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 진리를 높이 평가하고 상대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정당한 근거에 대해서는 기꺼이 받아들이는 공평무사한 사람, 마지막으로 상대방 주장이 진리라는 판단이 서면 기꺼이 자기주장의 부당함을 인정하는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사람하고만 토론을 벌여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이라면서 며칠 전 페친이 공유한 글이다. 맞다. 완전 공감.
무엇 때문인지 이미 마음에서 싫은 사람들과는 그 어떤 일에 대해서 논하기 어렵다. 진영에 갇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 또한 토론은 불가능에 가깝다. 토론뿐만 아니다. 사안에 대해 아무리 노력해도 설득이나 공감받기 불가능에 가깝다.
싸움은 아무나하고 하는 게 아니다. 유은실 작가의 ‘순례주택’에서도 그랬다.
“싸움은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하는 게 아니다.”
싸움은 친한 사람들 즉 말이 되는 사람들과 하는 거다.
내 싸움은 남을 해하는 일이 아니다. 갈등이 일어나기에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고 얼굴을 붉힐 수도 있지만 결국은 합의점을 찾아서 서로 간 잘 되는 길을 찾는 과정이다. 핵심은 어느 정도(?) 신뢰하는 사람들 간에 가능한 일이다. 화를 내도 그가 왜 그런지 그 바닥을 이해하면서 접근하게 되면 깊은 이야기 나누며 시너지 커진다.
하지만 무조건 자기주장과 자기 고집과 신념에 갇혀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입을 닫는 게 상책이다. 문제는 어쩌다 보니(?) 관여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비판(난) 받을 때가 있겠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당황스러워 한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종일 전화와 회의만 했다. 좋은 분들과 대화 나누며 가슴 따뜻함도 전해 받지만 가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 말과 순례주택에 ‘싸움’이라는 저 문장이 떠 오르기도 하지. 가끔은 이런 날도...ㅋㅋㅋ 좋구만. 나를 다시 성찰할 수 있어 좋은 날. 아주 가끔씩 프리렌서(?)에 대한 이전에 내 모습도 추억하지만 지금 이 생각은 아닌 듯. 다시 하늘 보면서. 좋은날 쭈욱 가야겠지?
'연구 및 관점 > 비영리 조직운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대가 싫어하는 소리를 하는 이유 (7) | 2022.08.27 |
---|---|
굽은 나무와 같은 리더 (10) | 2022.08.19 |
현장과 연구의 관계 (0) | 2022.06.16 |
조직의 존재 이유 (0) | 2022.06.01 |
NGO, NPO 조직의 구성요소 (0) | 2022.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