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한 지
사흘째 되던 날
고시원에서 만난 친구가 말했다.
나 고아야
너처럼 불효 한번 해봤으면
원이 없겠다.
연구소의 청소년위원회에서 시집을 펼쳤다. 내가 읽은 황금률이라는 시. 김규영 위원님이 안내해 줘서 읽게 된 이문재 시인의 ‘혼자의 넓이’ 중 하나다.
몇 줄 안 되는 시에 울컥했다. 지슬을 읽고 감자를 보면서 4.3으로 힘겨웠다.
김 위원님이 가로등을 읽었다. 가로등의 모습은 낮에 잘 보이지만 가로등은 밤에 쓰임을 받고 밤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불을 밝히고 사람이 보이게 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본질은 무언가 싶다.
김 위원장님은 딸아이가 읽은 시를 녹화해서 들려 주었다.
얼굴이라는 시에서 “내 얼굴은 나를 향하지 못한다, 내 눈은 내 마음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손은 내 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이 위원님은 지구의 둘레보다 조금 더 큰 넓이가 이 시인의 넓이가 아닐까? 라고 물었다. 누군가 이과생(의사샘)이라서 정확하게도 표현한다고 했다.
김 위원님이 읽어 주셨던 “이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듣는데 또 울컥했다.
이 먼 나라를 만드는 사람들과 오늘 밤에도 연속해서 만났다.
이 밤에 청소년 활동에 대해 여름방학 진행하는 마을 활동에 대해 논의하고 머나먼 미얀마, 탄자니아 등의 청소년을 어떻게 지원할지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 안에서 달그락에 활동을 공유하고 시를 읽고 너무나 진지하게 시 구절 하나하나에 빠져서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장에서 일 하고 10시 가까운 시간까지 청소년과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길위의청년학교 청년들이 있다. 위원회 마치고 바로 길청 연구회 들어갔다. 청년들 토론이 한창이다. 오늘 배울 내용마저 설명하고 “이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읽어 주었다.
청소년위원회의 위원님들, 길위의청년학교에 청년들도 내가 보기에 모두 ‘이 먼 나라를’ 지금 이 순간에 계속해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퇴근 후 노트북 열어서 이 글 끄적이다가 포털에 시인이 악담했다는 기사가 올랐다.
“무속적 신념이 아니고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부터 시작해서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는 몇몇 장관 인선과 검찰 독재 의지의 가시화 등을 지켜보자면 절로 식은땀이 흐른다.” 류근 시인의 페북 글인데 악담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일보가 기사를 올려 놓았다. 시인의 글이 악담이 되었다. 류 시인은 지금 살아내는 이 시간을 ‘식은땀’이 흐른다고 했다.
“시인은 카나리아라고 합니다. 카나리아는 이산화탄소에 민감해서 탄광에서 이 새가 죽으면 가장 위험에 빠진 것이라며 광부들이 닥쳐올 위험을 미리 감지합니다.” 황 위원님의 말이다.
시인은 그런 존재다. ‘식은땀’을 닦아 낼 힘이 있어야겠다. 민감한 카나리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일이다.
“자기희생이라는 뜻. ‘너는 내 밥이야’란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데 사실은 ‘너’ 때문에 내가 산다는 얘기 아닌가. 지금 우리가 누군가의 밥이 되지 않고 저 혼자만 먹으려 하니까 세상이 지옥으로 변한거다. - 중략- ‘네가 내 밥이다’에서 ‘내가 네 밥이다.’로 전환해야 한다. 우주 질서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원리가 자기희생인데 그게 결국 밥이다.”
이문재 시인이 김종철 선생님을 기리며 쓴 시중 일부다.
그래 우리가 그의 ‘먼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네 밥으로 전환해서 살아야 한다. 내가 네 밥이라는.
하루가 또 이렇게 갔다.
#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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