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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강의 및 연구

강의 본질

by 달그락달그락 2020. 9. 8.

교육(강의) 할 때 화낸 적이 많았다. 저 사람은 집중하지 않고 다른 짓(?)을 하는데 왜 앉아 있을까? 정중히 밖으로 나가도 된다고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스마트폰 쪼개 버린다고까지 했다.

 

청지사, 복지사, 교사, 상담사 연수, 보수 교육이건 기관단체 특강이건 워크숍 세미나, 대학, 대학원 등 그 어디에서건 집중 시켜야 했고 한 두 명이라도 다른 짓을 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집중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공격적인 질문을 해서 무안을 주는 최악의 일도 했다. 교장, 교감, 관장 등 나이 있는 분들 교육에서도 서슴 없었다. 지자체 간부 연수에서도 그랬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이 만나는 청소년, 학생, 관계자 등 사람들이 주변에 어른 거렸다. 이 귀한 시간에 조금이라도 집중시켜 안내하면 그들이 조금이라도 들을 것이라고 믿었고 작게라도 변화될 거라 확신하고 질렀다.

 

청소년들에 대한 강의는 더 했다. 900여명이 초집중해도 한두 명이 딴짓하면 그게 마음에 걸려 그 친구들에게 주의를 주곤 했다. 교육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선생(강사)은 다수의 사람들을 흔들어야 하는 주체였고 수강하는 분들은 흔들려야 했으며 그만큼 변화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해도 따라오지 않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고 치부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강의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위했다.


언제부터인가 알게 됐다. 사람은 변화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콘서트 하듯이 내지르고 강압적 질문 등 쌩쇼를 하며 열변을 토해도 들을 사람만 듣는다는 것도 알았다.

 

사람의 내면에 어떤 사고의 직면과 고민은 개인이 그렇게 성찰하며 교육 공간에 앉아 있는 맥락과 닿아 있음도 알았다.

강하게 내 지르며 집중 시키느라 조금은 흥분하기도 하고 갑자기 욱하다가 깨알 같은 유머 섞어 가면서 설명하는 내 모습을 타자화 해 봤다. 웃겼다. 제 뭐하나?


또 한가지 문제는 내가 주장하는 어떤 관점과 사례의 결과와 중요시하는 이론들이 맞냐는 거다. 나름 인문사회과학이었고 내가 만난 현장이었지만 그 주장 모두가 완전할까?

 

학교 현장과 복지, 활동, 상담의 영역과.. 이를 접목된 지역이라는 공간의 마을이라는 공간에 내 마음대로 털어 대는 강의 지점이 당사자들에게 모두 옳게 전해 지느냐는 거다.

 

어떠한 공간이건 그 안에 맥락이 있고 역사와 문화가 있는데, 같은 이론과 그 시대의 상황과 사례를 타 공감에 접목시키는 것은 반드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 인정하고 강의하면서 접근하는 것과 확신 하고 주장하는 강의는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


강의는 소통이라고 여겼다. 현장에서 내가 만난 그 격한 상황의 감동과 혼란 등도 중요했고, 공부하고 써댄 연구 논문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처한 환경이었다.

 

그가 가진 이상과 가치, 철학에 따른 지속적인 자기 성찰 과정이었다. 그 일을 돕는 가장 일차원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쉽게 접근 하는 일이 강의였다.

 

정말 부족하지만 내 강의는 마중물이라고 여기게 됐다. 물을 끌어올려야 하는 마중물이지만... 올라오다가 다시 밀려 내려 갈 수도 있는 힘딸리는 부족한 마중물.


결국 강의(교육?)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샘의 가장 밑바닥에 부딪쳐 보고 다시 끌어 올려 보려는 일이다. 일단은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지도 않고 위치가 어딘지도 모른 상태에서 펌프 돌리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미친 짓이다.

 

강의는 사람과의 관계이고 아래로 내려가며 타자와 만나고 관계하는 시간이다.


오늘 오후 내내 길청 청년들과 긴(?) 시간 교육, 토론했다. 사람 사는 공간에서 실제 대면 관계가 코로나 이전에는 있었나? 교육, 복지,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하는데 이전의 대면 관계에 실질적인 관계는 어느 정도였나? 하는 질문.

 

이 질문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대면, 비대면이 아닌 관계의 깊이와 참여의 수준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오프라인 어느 공간에서건 대면과 비대면의 차이가 아닌 ‘관계의 깊이와 참여 수준’이 요체다.

 

실습생과 길청 청년들 함께 청소년 친화공간, 각 청년들 추진 사업계획 검토와 논의, 발간 준비 중인 길 위의 청년.. ‘이유’에 대한 글쓰기 교육과 이야기도 이어졌다. 7시가 다 되어 끝났다.

 


8월 초중순에 천안에서 충남 청소년운영위원회를 만났고, 청주에서는 문화재단에 문화예술가들을 만났다. 청소년, 참여, 마을 등을 중심으로 강연했고 고민 나눴다. 회의도 했고 달그락 청소년들 리더십 교육과 토론도 이어졌다. 오늘도 길위의 청년학교 청년들과 많은 대화도 나누었다.

 

강의, 교육, 대화 등의 1차 대상은 항상 나 자신이다. 이를 타자화하면서도 내재화할 때 마중물 역할이 이 친구들 뿐만 아니라 나도 그리 내려가 볼 수 있다는 것, 그래 교육 대상은 내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