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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글의 비판에서 오는 성찰과 스트레스의 어디 쯤

by 달그락달그락 2018. 7. 23.

하루 일정으로 평창에 다녀오면서 운전하다가 팟케스트 들었다. 팟케스트 주제가 가족, 연인 관계 등에 대한 내용이다. 방송 중 유명 부부 상담소 소장이라는 분이 한마디 하더라. 연인관계의 문제 중 상당수가 부모로부터 완벽한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때문에 원인이 된다고. 여러 사례들이 튀어 나왔다. 결혼 후에도 부부 관계의 문제에도 개인의 독립이 큰 몫을 차지한다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사람들을 일컬어 ‘덜 떨어진 놈’이라고 했다. 


‘덜 떨어진 놈’이라는 표현이 훅~ 다가 왔다. 그래 ‘덜떨어진 놈’을 여기에도 붙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독립? 자립? 




삶 가운데에서 자신이 중심으로 서야 건강한 인간관계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실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귀가 하면서 메모 수준으로 페이스북에 글 하나 남겼다.  


“커서도 부모관계 독립 안 되면 문제된다. 그런 사람들을 ‘덜떨어진 놈’이라고 한다나?”  


바로 댓글에 친한 학교 선생님 한분이 자신이 그렇다면서 부모님 함께 산다고 하고, 또 한분도 자신이라면서 어제 일 잘 다녀왔느냐면서 안부 묻는다. 한분은 학교에서 또 한분은 학교 밖에서 열심을 다해 어린이, 청소년들 만나는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다. 


이 짧은 글로 그분들 마음 좋지 않았을까? 친구들 중 반응은 안했지만 보고서 유쾌한 사람도 짜증난 사람 등 다양하겠다. 늦은 시간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에 별별 생각들이 떠돈다. 올린 글은 이분들 이야기 아니고, 부모와 같이 살고 안살고의 문제도 아닌데. 이 단문의 한 문장만 보았을 때에는 괜히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이들의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일 들었다. 머리 복잡해서 글 삭제 했다. 피곤하면 작은 스트레스에도 민감해 지기 마련. 


며칠 전에는 신뢰하는 지인에게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전화까지 받았다. 나를 알기에 어떤 관점으로 쓴 글인지 이해하는데 주변 지인들이 왜곡해서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살짝 부담이다. 


몇 년 전까지 정부 비판적인 글이 많았다. 청소년 정책 등 관련 분야에 대한 비판은 조금 더 강했다. 정부 정책, 정치, 사회적 문제 등 내 고민 안에서 시민으로서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나름의 신념이 있다. 시간 허락하는 한 할 말은 하려고 했다. 많이도 다닌 세미나, 토론회 등의 정제된 발표문 이외에 생활에서 의견을 표출하고 반응이 있는 가장 쉬운 공간은 SNS 다. 몇몇 글은 나도 모른 채 기사화되기도 했다. 


어떨 때에는 담당 정책 담당자 등 관계 기관에서 전화도 받았다. 맥락과 과정을 설명해 주는데 상당수 내포된 의미는 글이 꽤 공유 되니 내려 달라는 뉘앙스가 강했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안했다. 그 때에는 할 말 최대한 하려고 했다. 정부도 이상했고 관계자들 하는 일들이 현장 가운데 있는 내 위치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상한 문제들에 대해 나 같은 시골 촌사람이라도 한마디 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전에 태안해병대 캠프 참사사건 이후 정부정책이나 방향이 안전문제를 관리 통제적으로 접근하면서 실질적으로 대안을 만들어 움직이는 일에 소극적이어서 화가 났다. 전국 연대 꾸리고 구체적인 방안들 제시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를 만나면서 멘붕이 왔고 그 안에서도 전국 네트워크 만들면서 이런저런 활동 이어 갔었다. 


18세 선거권 관련한 전국적인 공동행동네트워크로 일도 진행했었는데 그러한 전국적인 연대활동 하면서도 복잡한 여러 이야기들 많았지만 나름대로 뚫고 갈 수 있는 힘들이 있었다. 그런 말의 출처들 살피면 대부분 갑중에 갑이라는 자들에게서 나왔으니 내 딴에 당연했다. 


요즘 들어 고민이 생겼다. 정부정책의 관료나, 정치인이나 중앙의 거대 공공 재단 등에서 오는 어떤 비판이 아닌 내 일상적 삶에서 나누며 함께 하는 이웃들의 반응을 보면 생각이 너무나 많아진다. 몇 가지 단문의 글 올리는데 괜히 내 주변의 이웃들 중 오해 갈만한 생각도 있겠다는 생각들. 편의점 문제만도 그렇다. 


내 딴에 갑중에 갑은 대기업과 이를 조정해서 법률적 변화와 정치적 노력을 하지 않고 을과 병을 위한 법안 모두 걷어차고 있는 정치권의 문제 때문에 편의점 주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그 안에서 일을 하는 을도 안 되는 병이라는 알바생들의 고초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간단한 단문의 글조차도 내 이웃 중 편의점 주가 볼 때에 자신들의 비판하는 글로 해석도 되다.  




실제 맥락을 안내하지 않는 단문의 임팩트 있는 글이 어떻게 반응 되는지 조금은 안다. 수년간 SNS, 블로그 등 운영하면서 나름의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내 안에서는 맥락을 가지고 쓰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맥락 없는 단문의 아주 짧은 글들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관점이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단문의 글이 빠르게 인식하기에는 좋지만 그 내용의 당사자라고 여기는 순간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다. 비판적 글에 대한 당사자는 무신경하거나 쳐다 보지도 않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관계 없는 분들이 자신들을 두고 하는 글로 오해하거나 저격글 비슷하게 받아 들이기도 한다. 


비난이 아닌 비판한다는 것. 삶의 과정에서 깨달은 그 무엇을 요약한다는 것은 개인의 성찰 과정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타자의 반응에 따른 내 안의 성찰 또한 너무 귀한 일이다. 어떤 사회현상이나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 나누었을 때 타자들이 안내하거나 또 다르게 비한하는 내용들 살필 때면 내가 몰랐던 여러 일들을 알게 되고 다른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삶 안에서 자연스러운 학습과정이다. 


글이 살아서 움직일 때 긍정도 있고 오해도 생긴다. 다른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이 비판과 토론이 너무 좋았다. 내 안의 성찰과 내 관점의 비판에 의해 성찰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타자의 이야기들을 최대한 수용하려는 노력도 하면서 다른 관점의 이해도 있고 또 다른 비판과 토론으로 조금 더 다듬어 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 비판이나 오해로 인한 몇몇 이야기들 접할 때면 부담이 커진다. 그 부담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피니 내 가까운 이웃들의 상황이나 그들이 받을 또 다른 관점의 생각들이다. 또 한가지는 괜히 부담 갖지 않아도 될 일들에 너무 힘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생각이 커지니 더 그렇다. 




어떤 이에게는 나의 군시렁 글들이 아무런 일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지인이라고 여겼던 사람의 인식이나 사회적 관점이 달랐을 때 나타내는 모습들은 전혀 다르다. 며칠 전에 SNS를 끊어 볼까도 생각했다만. 그러기에는 너무 왔다는 생각도 들고. 불특정 타자의 저항이나 부담이 또 다른 내 안의 어려움으로도 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이 많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