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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목적에 따른 수단의 본질적 가치를 알고 행하기

by 달그락달그락 2018. 7. 16.

"그들이 총을 쥐고 있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그리고 선거를 통한 개혁을 지지한다. 우리가 총을 쥐게 되면, 그때는 총알을 통한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소수파였던 레닌이 볼셰비키들에게 던진 말이다. 그는 이 말데로 행했다. 소수파였을 때 평화를 주장했고 이후 총을 쥐었을 때 총알을 사용했다.  


간디는? 그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했다. 만약 간디에게 무기가 있었고 이를 사용할 사람들이 있었다면 과연 영국에게 비폭력저항운동을 했을까? 


간디는 '자서전'에서 영국에게 보복하거나 심지어는 복수하지도 않는 자신의 동포들의 수동성과 복종성에 대하여 그가 느낀 놀라움을 기록하고 있다. 간디와 그의 동료들은 불의와 폭력에 맞서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격렬한 저항을 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끊임없이 한탄한다. 


독립 후 초대 수상을 지낸 네루 또한 마찬가지였다. 1961년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국민을 "모든 지배세력에게 위협당하고 억압받으면서도 저항 능력이 없는, 사기가 꺽이고 의기소침하며 희망을 상실한 집단"이라고 묘사했다. 


'비폭력저항운동'을 제외하고 영국에 저항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택은 오로지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는 것.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지 그 결정할 일이 한가지 밖에 없을 때 그 일의 당위성은 매우 부각되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정의가 있다면 더욱 더 크게 반응이 된다. 


이후 독립 후 간디와 함께 비폭력 평화운동을 이끌었던 네루는 파키스탄과의 분쟁에서 무력을 사용하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이 때 간디는 자신의 신념과 윤리, 도덕에 따라 파카스탄에 사용하는 무력을 반대했을까? 우리가 생각했던 간디는 폭력은 안된다면서 막아야 하지 않나? 


네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간디는 자신의 반대의견(비폭력)을 나타낼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큰 위안이었습니다.- 중략 - 간디가 융통성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굳혀 주었습니다."라고. "선택하는 수단의 종류와 그것의 사용방법이 적(변화시켜야 할 대상)의 형세 또는 반대세력의 성격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울D. 알린스키 


또한 비폭력 저항운동은 영국이어서 이렇게 먹힌 것이지 만약 '나치'나 '일본'이었다면 그랬을까? 전혀 맞지 않다. 


더 웃긴 이야기도 있지. 인도가 독립을 쟁취하고 8개월이 지난 후, 인도 국회는 비폭력평화시위인 '소극적 저항'을 법으로 금지하고, 그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한다. 알린스키는 "모든 효과적인 행동은 도덕성이라는 통행증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처칠, 간디, 링컨 그리고 제퍼슨을 포함하는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유', '모든 인간의 평등', '인간이 만든 법보다 높은 법' 등과 같은 치장으로 벌거벗은 이기심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도덕적 원칙'에 호소했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p. 88 


선택이 그것 하나밖에 없을 때 과정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내재적 가치가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러셀 Bertrand Russell은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본 인간사회에서 "내재적 가치는 수단으로서의 가치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것이다.1" 라고 강조한다. 


우리네 행하는 일의 위치... 활동가, 조직가 등 뭐든 좋다만.. 우리가 꿈꾸는 것은 그러한 나름의 고귀한 가치에 집중하는 것 아닌가?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연대하고 조직한다. 


어디에서건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목적을 설정한 후 훌륭한 수단을 사용해 과정을 잘 지켰다고 주장은 하지만 그 특정하고 고귀하고 붙잡아야 할 가치를 놓치는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건물주만을 위한 법을 몽땅 통화시켜 놓고서 그 과정이 민주적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민생법안들 상정해 놨는데 국회 그것도 꼭 법사위에서 모두 막혀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이것이 민주적인 소통이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공립학교에서 공공의 교육을 받으면 성적이 잘 나와야 하는데, 사교육이 그 모든 것을 압도하며 공교육을 파괴하고 약자는 더욱 약해지고 소구 기득권은 더욱 강해지는데 이 또한 자본주의요, 민주주의 원칙이라면서 공교육 강화를 위한 변화를 막아내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성정체성이 다르고, 외국에서 난민으로 국내에 들어 온 이들을 차별하는 법을 통과 시켜 놓고서는 그게 민주적이며 맞다고 우긴다면? 그 때에는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건든 것이라고. 


알린스키가 강조하듯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가치들을 성취하기 위해 실제로 이용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적 수단이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이 특정한 목적이 이 특정한 수단을 정화화하는가?"라고 바뀌어야 옳다. 


그 특정함을 특정함으로 인식하고 평화, 약자인지성, 정의, 자유 등의 가치 등을 실현해 나가는 그 것 자체의 특정함. 그 특정함은 내게는 가장 귀하고 소중한 인간이 가져야 할 우선적인 가치에 가깝다. 그 가치가 중요하다. 목적 안에 내재화 되어 있는 그 숭고한 가치. 


수단에 갇히지 말며, 누구를 우상화 할 일도 아니다. 수단의 잘 못됨을 맹신하고 추종하면서 알량한 몇 가지 윤리와 도덕에 집중2해 버리면 그 본질적인 가치는 상실되기도 한다. 민주주의 과정을 지킨다면서 차별을 하고 약자들을 힘들게 하는 법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본질적인 윤리 또한 아닌게 된다. 투박하더라고 그 과정을 고치고 막아야 한다. 이는 어떠한 특정한 목적과 특정한 수단의 정당화의 과정과 실현이다.


그 특정함이란 본질적 가치를 알고 행하는 일. 활동가라고 칭하는 우리네 사람들이 행할 일이다.

  1. 이문장 앞에 글을 다음과 같다. "도덕성은 수단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물을 단지 그 자체의 내재적 가치와 관련해서만 고찰하는 것은 거의 비도덕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만일 무엇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수단으로 사용되는 그 무엇은 어떤 것이라도 결코 수단으로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내재적 가치는 수단으로서의 가치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2. 알량한 윤리와 도덕이란 민주주의에서 본질적 가치는 무시한채 법적인 과정을 지켰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