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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방과 후 체험활동에서 시작하는 올림픽이라면?

by 달그락달그락 2018. 3. 12.

평창올림픽이 끝났고 그제 패럴올림픽이 시작되었다. 나는 올림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올림픽뿐만 아니라 내 나이의 남자들 대부분이 열광하는 월드컵도 심드렁하다. 엘리트 체육이 싫다. 



출처. 한겨레 정치Bar. KTV 대한뉴스 유튜브 채널 갈무리


운동은 건강과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운동선수들을 맹목적인 메달 기계로 만들어 국위선양 도구1로 활용하는 것 같았다. 우리 역사에서 독재자들이 행했던 이상한 체육계의 현실2이 반영되는 것 같아서 더욱 싫었다. 


운동은 목적이 되기도 하고 수단이 되기도 한다. 선택지가 있는 그 어떤 활동인데 어린 시절부터 선수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운동기계로 키우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선수들의 환경이 생선가시 목에 걸린 것 마냥 매번 마음에 걸렸다. 


김연아 처럼 성공한 선수는 백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역량과 함께 부모들의 삶을 건 헌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선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김연아와 같은 선수를 꿈꾸지만 그러한 역량과 누군가의 삶을 건 헌신을 위한 일은 극히 드물다. 김연아 선수를 너무 좋아하지만 자신의 삶이 없는 부모의 헌신이 과연 옳은지는 내 안에 매번 고민이었다. 


수년 전 모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체육관련 학과였는데 청소년관련 몇 과목을 개설했는데 도와 달라는 거였다. 출강해 보니 40여명 남짓한 학생들이 수강 신청했다. 반수 이상이 체육관련 학과 학생들이었고 나머지는 교육학이나 사회복지 전공 학생들이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체육 관련 학생들 중 수업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몇 명은 책도 구입하지 않았고 심지어 볼펜 한 자루 달랑 들고 오는 학생도 있었다. 지금까지 대학 강의 나가서 이정도 수준의 학생들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가끔 짜증도 내고 화도 냈었다. 


어쩌다가 이 학생들과 대화하게 되었는데 학생들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학생들 대부분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하다가 대학에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그런데 운동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보려고 한다는 것. 그러던 중 청소년관련 공부하면 체험활동이나 청소년 야외 활동 체육 등에 도움 주면서 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수강 신청했는데 도무지 공부가 손에 안 잡힌다면서 힘겹다고 했다. 





평창 올림픽에서 가장 유명해진 선수들 중 컬링 팀은 단연 압도적이다. 한국 컬링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은 의성여고의 방과 후 체험활동에서 싹을 틔웠다. 김은정은 고교 1학년에 체험활동으로 컬링을 처음 접했고, 그 유명한 친구 ‘영미’에게 같이 하자고 권유하면서 시작했다. 시골의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틈만 나면 농촌에 일손을 보태면서 학교 공부도 하면서 방과 후 활동으로 시작한 컬링이 열심을 다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게 됐다. 


메달의 소중함을 안다. 더 중요한 것은 메달을 넘어선 우리 선수들의 그 땀과 노력이다. 훌륭한 선수들이 운동기계로 전락해 인권을 침해당하고 몸을 상하면서까지 메달만을 따야 하는 선수로 길러지고 그 안에서 낙오하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은 없었으면 좋겠다. 운동하면서 또 다른 사회생활 할 수 있는 일도 했으면 좋겠고, 메달을 따지 못해도 사회에서 다양한 직업군 안에서 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으면 더 좋겠다. 


엘리트 체육만이 아닌 사회체육에서 자연스럽게 대표도 되고 사회인으로서 다양한 직업도 가질 수 있는 그런 시민들. 압박과 강압이 아닌 방과 후 체험활동 등에서 자연스럽게 시작하면서 즐기면서 몰입하는 활동이 올림픽 선수로까지 이어지는 상상은 컬링팀을 기점으로 더욱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1.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1976년 8월1일로 시간을 돌려보겠습니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까지 포함하면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선수는 1972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회 휠체어 탁구에 출전한 송신남 선수입니다.) 양정모 선수는 이날 오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급 결승리그에서 몽골의 오이도프와 미국의 존 데이비스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땄습니다. 방송사는 정규방송을 멈추고 긴급 뉴스를 내보냈고, 신문도 호외를 찍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박정희 전 대통령도 축전을 보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금번 우리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경기에서 강호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한 것을 온 국민과 더불어 경하해 마지 않는다”며 “아울러 국가의 명예를 위해 선전분투하고 있는 선수 임원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해 마지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한겨레 정치Bar“나라의 명예”→“사랑합니다”…대통령 올림픽 축전, 이렇게 변했다. http://www.hani.co.kr/arti/PRINT/832974.html [본문으로]
  2. 태릉선수촌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아래 나무위키(출처) 설명 한번 들어 보자. #태릉선수촌은... 합숙훈련시설임과 동시에 각종 국제 경기를 개최하기도 하나,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이 이곳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참고로 국가차원에서 일반 대중은 사용할 수 없는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만을 대상으로 한 전문 시설을 운영하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로,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 선수가 패할 때마다 "우리나라는 왜 국가가 지원을 안 해줘서..."라는 말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올림픽 메달을 땄다고 연금을 주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이 곳이 생긴 것은 냉전 시기의 이념 대립과 관련이 있다. 구소련과 유고슬라비아등 동구권 및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진영은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진영에 비해 경제력과 생활수준이 뒤떨어지다 보니 올림픽 등 국제경기에서 서구권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소련 등 동구권 국가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고 스포츠를 체제선전의 도구로 삼기 위해서,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국가가 직접 선발하여 국민의 세금을 쏟아부어 이들을 국가가 직접 훈련시켜서 국제경기에 출전시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기 위해 이런 국립 훈련시설을 만든 것인데,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후발 국가였다는 특성 때문에 공산권 국가를 따라하여 태릉선수촌을 만들게 된 것이다. 사실, 스포츠로 우민화 정책을 펼친 독재정권과 국가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 진영임에도 상당한 국가의 개입이 들어갔으며, 특히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개최를 기화로 더 강화된 측면도 있다. 그후 국가가 민주화 되었음에도 여전히 비인기종목에 대한 지원을 명분으로 다른 서구 국가와 달리 이런 시설이 축소되지 않고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