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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활동

청소년운동 (3): 형식적 이슈파이팅과 공모사업에 능한 사람들

by 달그락달그락 2017. 3. 20.

꽤 긴 시간 동안 '활동'이라는 것을 해 왔다. 내 직업에 따른 위치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청소년활동가'라는 타이들이 자연스럽다. 오래 전 단체 활동가일 때 지역에 이슈 터지면 단체 이름으로 성명서 작업하고 간단한 몇 가지 추모나 캠페인 등 이벤트하면서 언론에 좋은 일 한다고 알리고 지역사회에서 칭찬 받은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또 비슷한 문제가 생기면 또 다시 관련된 단체들 연대라는 이름으로 결합하고 성명서 내고 간단한 이벤트 하고 다른 이슈 터지면 또 그렇게 옮아가는 일들이 잦았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참여하는 단체들은 매번 같았다. 


이런 일들이 나름의 성과도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하지 않으니 그 누군가는 정부, 지자체 등 비판도 해야 했기에 그 수준에서 관계자들이 고민했을 것 같다는 예상을 한다. 더불어 몇 가지 사안은 연대가 커지면서 중요한 일들을 막아내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또 비슷한 일이 터지고 또 다시 비슷한 일들을 진행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청소년과 관련한 모든 것의 전문성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내부를 까 보면 어떠한 본질적 가치나 정책적, 사회적, 교육관련 내용 등 그 분야에 집중하며 연구하고 활동하며 움직였던 사람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번 문제가 생길 때 이슈를 맞닿으면서 어설픈 연대 조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고, 어떤 대화의 흐름으로 조정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무엇을 배웠다기 보다는 이슈를 선점하고 나와 단체의 이름을 알리는 데에 능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더불어 토론회, 포럼 등을 개최하며 불러 모은 관련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설픈 지식은 있었지만, 실상 그 안의 내밀하고 전문적인 내용들은 수박 겉핥는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사회 시민사회라는 이름의 NGO, NPO들이 90년대 중후반 김대중 정부(내 기억으로 그렇다)부터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상당히 많은 조직들이 이슈파이팅에 능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안에서도 나름의 전문성을 찾아 어떤 한 일에 집중하며 사회를 바꾸는 단체들도 있었지만, 그 때의 오래된 관성(반복적인 이슈제기만)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이슈에 따라 움직이는 단체들을 보게 된다. 


그러한 단체에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른다. 특히 백화점식으로 이런저런 모든 사업들을 빨아들이며 진행하다가 이슈와 프로젝트에 집중하며 움직이는 조직들. 이런 단체들의 특성이 있다. 매번 일(이슈) 있을 때마나 담당 실무자는 이슈파이팅이라며 관련 전문가들에게 자료를 요구하고 자료 바탕으로 현실에 나타난 문제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성명서나 보도자료 내고 활동한다. 나름 열심을 다해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소수 활동가도 있었지만 정작 실질적인 피케팅 한번 하지 않고 보여주기식 이벤트 몇 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명서, 보도자료와 한두 가지 이벤트를 통해 자신들의 조직은 모든 것을 행한 것처럼 우기기까지 한다. 


시간이 지나고 그러한 이벤트 비슷한 일들이 쌓이면 내용이나 수준은 없지만 모든 일을 해 본 단체로 여기는 듯싶다.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변화는 일으키지 못하고 연대라는 이름으로 이슈 해결을 위해 참여는 했지만 사회에서 그 단체나 사람들을 그 일의 전문가로 전혀 인식하지 않는다. 이슈 선점에 혈안이 되어 ‘치고 빠지는’ 형태의 사람들로 보인다. 


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까? 


강산이 두어 번 바뀔 때이니 꽤 긴 시간 이 바닥에 생리나 내용들을 들여다보았다. 나름의 운동성, 가치, 철학 등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전략과 전문성이 살아 있는 조직들은 작고 소수지만 강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집요하게 매달리고 그 문제에 대한 나름의 전문성과 자료 축척 그리고 그 안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통한 조직적 확장이다. 후원자, 자문단, 지원 조직은 그 일의 성과를 알고 그 안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진정성을 전달받고 더욱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앞에서 문제제기 했던 이벤트 비슷한 이슈파이팅만 반복하는 단체들의 특징이 있다. 자신의 단체에 역사나 활동 역량 등을 포괄하는 어떠한 전문성과 정체성은 따지지 않고 매번 돈 되는 공모사업에 집중한다. 그러한 단편적인 공모사업, 프로젝트 등에 집중하다가 지역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대라는 이름으로 몇 단체 모으거나 내부 조직 잠시 동원하여 이벤트 간단히 하면서 우리 단체는 좋은 일, 중요한 일 한다고 강조한다. 


공모사업을 한다고 해서 나쁘다고 폄하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러한 공모사업들이 앞에서 문제 제기 했듯이 자신들이 잘 하고, 해야 하며, 조직의 역사와 문화 역량에 부합하여 진심을 다해 잘 하는 일이냐고 판단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안정적으로 나오는 돈에 있다. 이러한 조직의 생리가 있다. 공모사업에 대한 실적은 늘지언정 실질적인 지역사회 변화나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진정성 있는 관계, 변화는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 모든 일이 기관 운영과 실무진 인건비의 수단이 되는 경우다. 그 안에서 치열함이 있다고 우기는 이들이 있지만 그 치열함의 본질은 활동가의 생존 아니던가? 반문하고 싶다. 


나는 오래전 공모사업, 프로젝트 귀신(?)이었다. 계획서 쓰고 일단 돈이 생기면 그 일에 집중하면서 주변 이슈는 단순히 사업에 불과한 이벤트가 되었다. 돈을 주는 기관(정부, 지자체 등) 과정에 일을 열심히 포장하기 바빴다. 이런 일은 이제 신물이 난다. 


지역에 청소년이나 청년들 관련된 일들은 모두 내 일이라고 설레발 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하는 만큼, 내 역량만큼, 잘 할 수 있는 만큼 집중하고 집중해서 내가 나에게 미안하고 쪽팔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알량한 돈 주는 프로젝트에 목매서 사람을 사업의 대상으로 여기고 동원하는 웃기지도 않는 일들은 집어치우는 게 맞다. 진정성 가지고 사람 한명 한명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 아니던가 말이다. 


내가 이전에 매번 바쁘다는 이유가 무엇이었나? 결국 공모사업에 매달리고 그 사업계획에 따라 정신없이 이벤트 하기 바빴던 사업들, 즉 돈 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른 이슈난 문제에 대한 일들은 항상 뒷전이었다. 이러한 사업을 위해 벌려 놓은 잡다한 무수한 일들 때문에 매번 바쁘다고 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본다. 


그렇다고 공모사업 자체를 폄하하거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그 사업이 해야 할 일이고, 그 당시 그 시대, 그 지역에 필요한 일이면 돈도 생기고 잘 하면 정부 정책적 일과 연동되어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일들도 많다. 이전에 일하는 청소년지원사업은 수년간 지속되었고 작지만 소소한 정책적 변화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사업이 아닌 맹목적인 돈 되는 사업들을 취하고 허접한 보고서와 영수증으로 끝내면서 자신들이 어떤 전문가인 냥 행세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정말 하나의 일이라도 본질가치에 맞추어 고민하고 성찰하며 일을 잘 하며 살고 싶다. 사람을 프로젝트 대상이 아닌 사람답게 만나는 모임이나 조직, 당사자인 청소년, 청년들을 진정성 있게 만나는 일들에 집중하고 싶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우리 후배들과 동료들은 진정성 있게 가슴으로 함께 하는 동료이지 내 일의 대상이 아니다. 모두가 주체이다. 그들 삶에 그들이 참여하고 감동하고 함께 하며 소통하는 시민으로서의 관계들. 매번 꿈꾼다. 결국 내가 나를 속이지 않고, 내가 나에게 쪽팔리지 않게 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삶은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