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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안정’이 아닌 ‘진짜’ 일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by 달그락달그락 2014. 10. 28.

'영원한 현재'를 강조하는 인문학자들이 많더군요. 영원을 고민해 보니 '지속성'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에 남아 있는 질적 수준이 매우 높은 것이었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가짜가 아닌 진짜는 영원이지만 매일 보는 게 아니란 것입니다. 가슴에 남아 있는 나만이 아는 진짜 감정입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연암 박지원선생님의 말씀입니다. 비슷한 것은 더 위험한 가짜라는 것입니다. 

 나이키가 없어서 나이스를 신었고 퓨마가 없어서 파마를 입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차라리 싸구려 메이커였으면 창피하지는 않았는데 나이키와 비슷한 모양새의 나이스여서 힘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이키는 다시 사면되지만 우리 삶이 가짜일 경우에는 많이 아플 것입니다. 내 감정에 충실하지 않고 보여 주기식 가짜의 삶이 많아 보입니다. 우리사회가 젊은이들에게도 이러한 삶을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진짜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비슷한 게 아니지요. 온전히 내 가슴 안에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2014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직업가치관 조사결과 ‘직업안정성’이 1위를 했습니다. 10년 전 1위를 차지한 ‘성취’는 2위로 내려앉았습니다. 10년 새 한국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이 심각해 진 것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10년 새 전체 노동자의 46%가 비정규직인 기형적 고용구조가 일상화 됐습니다. 일은 시키는데 고용에 대한 책임은지지 않으려는 ‘유노동 무책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안정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환경입니다. 그렇다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을까요? 저는 단언컨대 수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안정적 일자리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안정성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단순히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조직이 안정화 되어 있다는 것입니까? 일의 근본적 가치는 고민하지 않고 몇 푼 노동의 대가에만 집중할 때 그 삶이 어떨는지는 누구나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강조해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오랜 시간(영원토록) 앉아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이 자신의 일이라고 강조하는 한 현재 우리사회를 뒤 덥고 있는 이 거지같은 세계화의 무한 경재담론에서 빠져 나오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안정성을 기하기 위한 또 다른 사회적 경쟁에서 피 말리는 싸움의 희생양은 결국은 우리 청소년들이 될 것이 뻔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도 모르고, 진짜의 자신의 삶이나 일도 고려하지 않고 ‘안정’에만 집중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현재 9급 공무원 합격률만 보아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단순합니다. 내 마음 안에서 시키는 일(할 수 밖에 없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그 안에 감동이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진로 문제의 요체는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자기 일에 대해서 끊임없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내가 행하고 있는 공부, 행하고하는 하는 일, 이미 행했던 일에 대한 그 근본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따른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가급적이면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해석이란 표피적이며 인지적 경험보다는 가슴으로 만나는 그 어떤 감동적 경험에 대한 자기표현을 뜻합니다. 이 거지같은 세계화의 경쟁체계 안에서 누구나가 찾고자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안정성에서 벗어나서 진짜 자신의 그 어떤 가치를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몇 년 후의 거창한 비전이나 목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이 하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고 도착지입니다. 그 안에서 끊임없는 자기 해석에 대한 성찰적 노력들이 그들의 삶을 진짜로 만듭니다. 

진짜는 비슷한 짝퉁도 아니고 안정과 지속성도 아닌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그 어떤 영원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자료출처. 한국고용정보원, 한겨레(2014. 10.28, 취업때 안정성 가장 중심, 고용불안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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