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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청소년에 대한 이해‘10대화 함께 생명평화운동 상상하기

by 달그락달그락 2008. 11. 19.

용인YMCA에서  주관하는 제2기 청소년평화교육가 양성과정에서 ‘10대화 함께 생명평화운동 상상하기(청소년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로 2008년 11월18일에 강의한 원고입니다.

근래 작업하고 있는 ‘청소년자치활동론’에서 청소년의 기본개념에 대한 내용에 평화의 의미를 연계했습니다.

아래 글은 각주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원본을 다운 받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원문 바로가기: http://www.youthauto.net/zboard/view.php?id=exampl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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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기본 이해

- 10대와 함께 생명․평화운동 상상하기-

 

정건희 (군산시청소년문화의집 관장)

 

 

청소년의 환경

“청소년은 누구입니까?”

“청소년에게 평화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청소년에게 평화를 전달하려 하는 지도자분들은 어떤 의미로 접근해야 합니까?

규정하여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청소년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자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청소년자치운동의 개념은 정합성의 원칙에 비추어 운동(movement)을 행하는 모든 활동의 근본이며 기본 가치를 정의합니다. 청소년과 그에 대한 운동의 정의는 청소년활동의 전반을 가름합니다. 평화의 의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존재합니까? 극단적 표현을 빌자면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대다수 입시환경에 둘러 싸여 있는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입시기계가 존재합니다. 입시기계를 양산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대상만을 청소년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겠으나 연령대를 비추어 볼 때 대다수의 대상이 그 곳에 놓여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청소년기에 학생이라는 신분을 정확하게 정의하기에도 어려운 일입니다. 학생의 정의는 존재하나 경쟁적 문화와 맞물려 본질은 흐려지고 일반화된 사회적 정의를 강요하여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학생 신분의 본연은 교육이며 교육의 최상위 목적은 인간애(人間愛)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현장 활동(movement)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교육의 일반론입니다. 교육이 조작적, 기술적, 문자적, 직업적으로 여러 정의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다양한 정의에 흐르는 기조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만드는 활동”이 핵심이라 믿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활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핵심입니다. 청소년을 입시기계로 만들어 경쟁체제 안에서 적응하는 경쟁의 도구로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성 상실을 키우는 행위이지 교육의 근본을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움을 내포합니다.

 

 

학생은 신분권

 

청소년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신분권의 하나인 학생이 그 모든 것들을 대신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학생이라는 신분 앞에 서게 되면 청소년운동 관점에서 행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지게 됩니다. 교육양극화에 따른 교육복지,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 학벌문제, 체벌 두발 등 학생인권, 시험, 수능 등 수많은 문제가 대두됩니다. 입시를 위한 학생이라는 신분의 대상은 존재하나 청소년은 지역사회에 보이지 않습니다.

학생이 아닌 신분을 가진 청소년은 간혹 탈학교 청소년이라는 부정적 꼬리말이 따라 붙습니다. 학교만이 유일하게 청소년들이 함께 해야 하는 곳으로 낙인 되어 그 곳을 벗어나는 순간 청소년은 불안전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입시를 위해 모든 것에 사활을 걸게 하는 학교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학생이 존재하나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꾸어 학생이라는 신분만 존재하지 주체로서 모든 신분을 얻어야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또한 청소년운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청소년자신의 다양한 신분을 찾아 주는 운동을 뜻합니다.

청소년은 한세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사람으로서의 공동체로 인정받아 학생, 자녀, 청소년단체의 회원, 교회나 절의 성도, 동아리 회원 등 각 영역의 신분에서 학생만이 아닌 생명으로 함께 존재해야합니다.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청소년이나 그렇지 않은 청소년이라도 생명으로서 모든 이들과 분절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공동체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야 합니다. 청소년평화운동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청소년의 의미

 

청소년을 단 몇 문장으로 정의내리기 어렵습니다. 한 인간의 삶을 단 몇 글자로 이야기 하려는 발상부터가 문제로 보입니다. 연령에 비추어 그 순간의 모든 이들을 몇 단어로 정의내린 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미 여러 학자들이 질풍노도(疾風怒濤)기라며 규정 지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성인들 중 이 단어와 유사한 의미를 부여할만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도 이들을 질풍노도기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성인들에게 지불유예(支拂猶豫, Moratorium)기라고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시기의 대상에게는 나중을 위해 현재는 지불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학교나 학원에서 입시를 위해 입시기계로서의 임무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시합니다. 통제합니다. 가르치려만 합니다. 하지만 성인들 중 수많은 이들이 취업을 위해 도서관에서 학원에서 공부하지만 이들에게 지불유예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60억의 전 세계 인구 중에서 똑같은 이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쌍둥이일지라도 다릅니다. 이미 인간으로서 한 생명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다릅니다. 다양성은 인간이 생명을 얻은 이후에 당연히 누려야할 기본적 권리입니다.

저는 청소년을 ‘생명’이라 지칭합니다. ‘사람’이라 이야기 합니다. 청소년기 연령의 사람으로서 생명을 가진 자들을 일컫습니다. 저는 10대의 사람을 청소년이라 칭합니다.

 

 

청소년평화를 이루기 위한 운동(movement)관점

 

운동은 변화를 추동합니다. 뜻을 세우고 사람이 함께 하여 변화를 이루어 냅니다. 변화를 추동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가능합니다. 한명, 두명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함께 하며 사회가 변해 갑니다. 운동의 정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 근래 유행하는 사업인 사회사업(사회복지)과 비교해 봅니다.

사회사업(social work)이라는 뜻 또한 운동(movement)의 정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회사업은 사회로서, 사람으로서, 공동체로서 일을 도모하기에 어찌 보면 운동과 차이가 없어 보이나 차이는 존재합니다. 운동은 조직화를 통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주의 사회사업은 조직화에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사회를 도모(for the society)하여, 사회로서(by the society), 사업을 진행합니다. 차이가 존재합니다. 여기에서의 사회사업은 현재 만연해 있는 사회복지의 일반적 개념과는 차이를 두고자 합니다. 뜻은 이상적이나 대부분 실행에서 사회사업의 근본 담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연주의 사회사업은 그 근본 가치를 충실히 행합니다. 매우 중요한 핵심적 가치를 실현합니다. 운동담론에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용어와 개념은 혼란스럽습니다. 조작적 정의를 내립니다.

운동(movement)은 그 대상적 범위가 매우 큽니다. 모든 일들을 대상으로 행해 나가는 일입니다. 환경운동차원에서 진행하는 일들은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중요시합니다. 자연환경을 더욱 중요시하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궁극적 목적은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나 현실론적 입장에서 자연의 피폐와 어려움으로 인해 더욱 중요시 하기도 합니다. 운동은 자신의 가치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행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광범위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운동 또한 그런 개념으로 접근하면 매우 광범위한 정의를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청소년 운동의 개념은 사람으로서(사회로서) 청소년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행하는 것이라 정의 내립니다. 청소년평화운동의 정의를 내려 봅니다. “청소년이 사람으로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행하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평화는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평화의 의미는 전혀 다르 게 전해 질 수 있습니다. 객관화 시키기 어려운 용어입니다. 저는 사람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자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가치로서 자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자치할 때 평화는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자신이 자치한 삶을 살 때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청소년자치의 의미

 

청소년은 자치해야 합니다. 그들의 환경에 참여하고 능동적이며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 주체적인 존재여야 합니다. 한 생명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나 현시대의 한국사회에서는 참여하지 못하고 항상 주변자로 남아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지역사회에 청소년이 보이기를 꿈꿉니다. 수평적 소통관계가 핵심입니다. 참여자로서의 자기 인식, 생명으로서의 인정을 받는 매우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사람으로서 수평적 관계로 서로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중요한 명제이기도 합니다. 합력한다는 것은 지시와 통제가 아닌 협의하며 소통하는 수평적 관계를 뜻합니다. 청소년의 관계 형성(소통)의 핵심입니다.

청소년자치운동은 청소년이 주체성(자기 주동성)을 가지고 그들에 의해(by youth) 사회와 수평적 소통이 가능하도록 그들과 함께(with youth) 하는 활동이라 정의합니다. 즉, 청소년지도자들의 운동은 “청소년이 보이는 지역 사회체계를 구축”하고 “가치 지향적 청소년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년자치운동은 청소년평화운동입니다. 제 안의 원칙(principle)입니다.

 

 

청소년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함께 하는 방법

 

평화는 모든 이들이 꿈을 꿉니다. 다양한 종교에서 각자의 신념과 신앙대로 평화를 이야기도 합니다. 신앙과 신념이 실천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자신의 안을 보며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내적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종교도 있습니다.

예전부터 평화에 대한 가치를 고민하면서 제 안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과연 인간이 내적인 완벽한 평안을 이룰 수 있을까?”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절대적 평화가 가능할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 수행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만의 깊은 절대적 평화를 얻기 위해 사회를 등지고 떠나기도 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이러한 자기만을 위한 평화를 찾기 위해 수도를 위한 삶이 과연 옳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되어 있기에 제 안에서는 그러한 삶이 쉽게 다가오지 못 했습니다. 세상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과정을 살아가는지가 평화담론에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무상무념은 가슴 안에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자신과 이루어진 주변의 수많은 관계를 회복시키는 과정 그 자체가 평화를 이루는 과정이며 결과입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한 과정 자체가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과정 그 자체가 평화로운 때이며 목적지라 여깁니다.

관계론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안의 관계, 사회에서의 관계, 신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사물과의 관계 등 우리 주변의 수많은 존재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 관계가 올바른 관계인지 그렇지 않은 관계인지에 따라 평화롭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청소년들과 세상과의 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청소년들이 평화롭기 위해 이 세상의 수많은 존재와 관계가 잘 이루어져야겠습니다. 청소년이 평화로운 관계를 앞에서도 잠시 설명 드렸지만 ‘수평적 관계론’에 주목합니다. 사회복지 이론에서 관계론을 설명합니다. 파트너쉽(partnetship)부터 다양한 관계를 설명하며 대상자와 사회사업가(social worker)의 관계를 대상자의 문제 해결 중심으로 설정합니다. 하지만 청소년의 ‘수평적 관계’의 핵심은 상대 문제의 해결만을 위한 관점이 아닙니다. 공통의 문제로 소통하는 관계이지 무조건적 청소년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지도자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청소년지도자 또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며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지도자가 문제해결을 받기도 합니다. 문제라 여기지 않는데 문제로 생각하며 처리하려는 경우 또한 경계합니다. 세상과의 관계가 불균등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관계를 체계적으로 잘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비평화적인 관계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관계 회복을 위해 몇 가지 제언을 드립니다. 완벽하지는 않으나 현재까지 경험으로 청소년들과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 즉, 청소년평화교육(운동)가로서 가져야할 매우 기본적 관계론입니다.

 

첫째로 청소년평화운동가는 청소년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청소년이 주체로서 그들이 행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합니다. 모든 프로그램과 사업들에 이러한 방법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청소년인권에서도 참여권을 강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함께 해야 하지 대신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되도록 함께 합니다. 대신하여 대변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운동을 수년간 해 오며 원칙적 목적으로 설정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나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추동하며 가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합니다.

 

둘째로 수평적 관계를 형성합니다. 내가 문제가 있음을 직시합니다. 청소년을 존중합니다. 그들과 함께 나와 당사자, 주변 환경의 잘 못된 관계를 회복하는 작업을 합니다. 청소년지도자가 가르치고 지시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매우 잘 못된 관계입니다. 서로간 존중하고 상호 소통합니다. 지도력(leadership)을 길러야겠습니다.

 

셋째로 모든 일은 함께 합니다. 지도자가 자신이 생각해서 옳다고 강조하지 않습니다. 좋은 뜻의 일도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가지고 소통합니다. 과정은 결과입니다. 과정이 결과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청소년평화운동 과정 자체가 목적이며 결과입니다. 과정이 목적이 됩니다. 과정을 결과의 수단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준비하는 단계부터 이미 목적은 성취되어가고 있습니다. 목적은 가치를 이루는 과정입니다. 최상위 가치는 평화입니다. 평화는 가치를 이루기 위해 시작하는 순간 생성됩니다. 상대와 내가 관계하는 순간 평화는 시작됩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미 평화를 위한 과정이 시작되었다면 매 순간이 결과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과정이 목적이자 결과입니다. 따라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다시 시작하며

 

아이들을 만납니다. 우리사회에서 10대라 이름 붙혀진 청소년입니다. 과거 개인적 열정만으로 그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상대를 위한다며 힘들게 관계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변화과정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삶에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민은 항상 남아있었습니다. 행복이라는 화두 자체의 어려움도 가슴 안에 존재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세상적인 가치와 물질론적 행복에 취해 사는 게 아닌 본질담론 안에서 사람다운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자치하는 삶이고 싶었습니다. 내가 만나는 시민들, 청소년들 그들 또한 자치한 삶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강압할 수 없습니다.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강압하고 지시하는 순간 본질은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본을 보이며 소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가끔씩 분노하는 제 가슴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표출하지 못합니다.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슴에서 새어나오는 어려움, 힘겨움, 고민들 결국 내 자신이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 자신의 평화를 내가 만들지 못하는 한 힘겨운 외피적 상태의 ‘교사’로서의 역할밖에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평화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중요한 가치임을 믿습니다. 자치한 세상이 평화세상임을 믿습니다. 자기자신을 다스립니다. 사회에서 자유합니다. 사회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사람을 인정해야 합니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생하는 삶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자신의 자치한 삶을 통해 이 세상에서 모든 만물과 공생하는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청소년의 개념-자치운동(정건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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