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과 나쁜 일
정건희 관장 (군산시청소년문화의집)
사람들은 역사를 해석한다.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사극의 드라마 작가, 만화가, 일반시민까지 다양한 이들이 자기 주관을 가미해 역사책을 뒤적이며 해석해 낸다. 해석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시간의 역사는 많이도 차이가 있다. 단적인 예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는 이들도 있고 경제발전의 지도자로 칭송하는 이도 있다. “자기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자기 마음’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주도적 능력을 말한다. 물론 역사학자들의 정확한 근거와 시대적 배경에 대한 해석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매우 중요하며 전문성을 존중하다. 강조하고자 하는 건 학자들의 해석이나 일반시민들의 역사인식이 나름의 주체적 해석이 아닌 몇몇 소수의 부류가 자신의 이기성을 찾는데 역사를 왜곡하여 강요하는 것을 문제시 하는 것이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크게 왜곡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학자들의 해석과 함께 그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자기로서의 주체성을 갖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 가진 자유의지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때문에 어떠한 일이건 자기 안에서 자신만의 해석 점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겠다.
‘좋은 일’도 비슷하다. ‘좋은 일’의 대명사인 사회사업(Social Work)이 몇 년째 유행(?)이다. 상당수의 지방대학의 학과들의 입학정원이 미달이 되어도 사회복지학 등 관련학과는 정원을 늘려 잡는 경우가 많다. 관련학과는 야간 수강생도 넘쳐난다. 개인적으로 직장에서 은퇴를 준비하며 공부를 하시는 분들도 많이 만났다. 청년들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기도 한다. 복지관 등 사회복지시설에서도 많은 이들이 근무를 한다. 모두가 ‘복지 전문가’이며 ‘좋은 일’을 한다고 한다.
‘사회복지’ 조금 정확하게 표현하면 복지(welfare)를 이루기 위한 사회사업(Social Work)을 행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예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2002년의 기준의 복지예산은 약 16조원 정도였으나 참여정부의 2006년에는 31조원 가깝게 증액 되었다. 그런데 결식아동이나 사각지대 청소년들, 장애인 등 대상자들의 어려움은 별로 낳아진 게 없다. 오히려 밥 굶고 힘겨워 하는 아이들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다. 물론 사회의 전반적인 환경이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증가한 국가예산과 늘어나는 복지시설에 비해 좀체 낳아지고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전국의 대다수 영구임대 아파트 안에는 거의 대부분 사회복지관이 존재한다. 예전에 비해 예산과 프로그램, 직원 수도 증가했다. 하지만 영구임대아파트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과거에 비해 커다란 변화의 조짐은 없어 보인다. 복지관의 프로그램은 더욱 다양화되어지고 전문화되어진다고 하나 정작 대상자들은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탈출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문제는 대상자의 ‘주체성’이다. 사회사업 한다며 주기만 하고 대상자로서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다면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기 주체성을 상실할 개연성이 크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을 양육하는 시스템을 강화시키는 모습이다. 양육되어지는 체계를 강화시키고 시설에서 적응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상자들은 받는 것에 길들여져 자신이 어떤 주체이고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홀로서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여러 관련 기관이 모두 그렇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다. 다만 상당수 대상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주기만 하며 ‘좋은 일’ 하는 것으로 착각하지는 않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눕혀 놓고 운동시키지 않고 배만 불리는 겪이다.
근래 운영기관에서 청소년 대상의 방과 후 사업을 시작하며 지역 중학교의 교감선생님을 만났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곳에서 너무나 많이 지원을 한다고 푸념이다. 이유인즉 받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고마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일예로 우유급식을 무료로 했더니 먹지 않고 장난치며 바닥에 던지고 버리는 양이 하루에도 너무 많다고 하소연이다.
가르치던 아이 중에 타 지역의 노인복지관에 취업을 했다. 몇 달 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아이의 말에 아픔을 느꼈다. 복지관에서 노인분들이 일자리 사업 한다며 한 달에 20여만 원 지급되어지는 공돈을 받기 위해 자기 손자뻘 되는 직원들에게 ‘아부’ ‘아양’을 떤 다는 표현을 했다. 어른 된 도리로서의 자기 상실을 하고 말았다. 이 뿐만 아니다. 예는 부지기수다. 복지시설은 갈수록 증가한다. 시설이 증가하는 만큼 대상자들은 사회와 차단된다. 시설에서의 프로그램도 중요하나 그것을 통해 사회와 연계하는 소통의 역할이 더 중요해 보인다.
자유의지와 상통하는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은 신이 내린 가장 소중한 선물 중 하나다. 그 선물을 먹을 것, 입을 것 등의 너무나도 작은 여건에 팔아버리게 하는 일은 결코 좋은 일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좋은 일’이지 대상자의 ‘좋은 일’은 아니다. 받더라도 자기의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받으며 다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사업뿐만 아니라 연필 만드는 일, 길거리 청소, 음식점, 마트에서 짐 나르는 일, 자동차 만드는 일 모두 ‘좋은 일’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일은 그 분야에서 대상이나 물건에 최선을 다하면 상당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게 최선일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사업가들은 그 대상이 주체적으로 자기를 깨닫고 바로 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고 현재처럼 시설 넓히고 귀속시켜 모든 것들을 기관에서 해결하려 하고 대상자들을 주체자로 키우지 않으며 지속해서 대상화만 시킨다면 남는 것은 기관의 실적일 뿐 본질적인 사회복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한 실적만을 자랑하는 한 결국 대상자가 증가하는 만큼 사회복지사들만 증가하게 될 뿐 본질적 해결책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사업이라 이름 붙이고 행하는 모든 일에 대상자의 자기 주체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 항목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자. 복지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사업을 행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은 “대상자의 주체성을 살리고 그들의 문제를 지역사회의 공동체성으로 해결 할 수 있도록 중간자적 역할을 행하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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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군산미래신문에 실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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