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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실용과 경쟁의 차이

by 달그락달그락 2008. 1. 22.
 

실용과 경쟁의 차이



정건희 관장 (군산시청소년문화의집)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실용주의”가 모토(motto)다.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은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과 실용성이 있는 이론만이 진리로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넓은 의미로 어떤 생각이나 정책이 유용성, 효율성, 실제성을 띠고 있음을 가르치며, 학문적 의미로 추상적 궁극적 원리에 반대하는 태도를 지칭한단다. 철학적 논제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근래 인수위원회가 쏟아내는 정책방향을 보면 새 정부가 사용하는 실용주의의 본래 뜻에 따른 철학적 의미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실용주의 보다는 “경쟁주의 정부”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사용처가 존재한다. 땅에 있는 돌멩이도 무언가 사용할 때가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사용처를 만들기 위해 경쟁을 더욱 크게 시키겠다는 논리인지 개인적 무식함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시험을 보면 우리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서도 찍어야할 정답은 존재한다. 그런데 오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에도 모든 이들이 오답을 선택한다며 자위하며 자신도 오답을 선택하며 안도한다. 현재 입시교육의 현실이다. 어쨌거나 우리 교육은 이러한 오답을 선택할 수 없도록 유도하는 정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 때문에 삼불정책도 나왔고 수능등급제와 내신강화 등 여러 정책들을 진행해 현재의 모습들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사교육비로 수십조 원이 퍼부어지며 아이들은 꿈이나 희망을 논하기 보다는 일단 상위권에 속해 일류대에 들어가기 위해 지옥과도 같은 6년여의 시간에 모든 것을 잠식당하고 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었던 고교 다양화 300플랜은 '기숙형 공립고교' 150개 지정, '마이스터 고교' 50개 육성,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이 핵심 내용이다. 이제 고교가 1등부터 꼴등까지 등급이 매겨진다. 앞으로 중학교도 시험보고 입학해야 할 것 같다. 특수목적고 등 소위 성적 1등 고교에 많이 진한시킨 중학교가 명문이 되기 때문이다. 중2학년 이후부터 시작하는 입시공부가 초등학교까지 내려간다. 이미 외고 등 특수목적고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준비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더욱 커질 것은 자명하다. 이와 더불어 그간 교육법 이외의 청소년정책으로 청소년기본법에 기초한 다양한 청소년들의 활동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학 자율권의 핵심은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데 맞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공부를 시켜야할 책임이 존재한다. 그런데 현재의 환경은 학생 선택의 다양성을 담보하려 하지 않는다. 입학방법에 따른 자율권을 대학에게만 줌으로서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주입식 교육을 통한 몇 몇의 우성인자를 추려내는 작업만이 더욱 자유로워지려 하고 있다.  이러한 자율이라는 논제가 학생들에 대한 자율이 아닌 서울의 몇 몇 대학의 입시선택을 위한 자율만으로 국한되어 간다. 입시의 자율을 이야기 하며 학생들의 자율을 철저히 억압한 채 대학마다의 일방적 잣대에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것은 코미디다. 결국 몇몇 대학과 고교만을 위한 자유로운 정책이 되고 말 것이다. 핵심은 자율의 대상에 있다. 현재 진행되어지고 있는 정책 자율의 대상은 교육의 주체가 아니고 공급자에 가깝다. 공급자인 대학의 자율은 극대화 시키고 수요자인 교육주체는 무지막지한 경쟁체제로 내몰며 자율을 주었다고 우기는 모습이다.

   

   사회에서 기업 간 경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은 경쟁보다는 협동과 공동체성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근래 대다수의 교육학자들이 주장하는 미래지향적 교육목적의 핵심은 “창의성”에 있다. 그래서 더욱 경쟁보다는 협동에 기반을 둔 공동체성과 다양성에 입각한 교육이 중요하다. 세상의 60억 인구 중 쌍둥이일지라도 똑같은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르다.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장단점이 다양한 아이들을 똑같은 내용을 주입하고 오직 대학입학과정의 한 부분에 불과한 성적에 잣대를 댄 후 우성인자와 열성인자를 확실히 구분하여 일생을 판단하는 방식은 맞지 않다.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다양성에 입각해 자기 자신과의 경쟁에 대한 다양한 잣대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잣대를 만들도록 유도해야 할 새로운 정부가 “자율과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회적 합의도 없이 또 하나의 ‘일방적 경쟁체제’를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옥과도 같은 입시고통이 의미 있는 고통으로 남으면 좋을 진데 상당수가 대학을 입학하고 나면 쓸모없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어떤 일이건 대가에 대한 결과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의 입시구조에 따른 결과물은 허망하기만 하다.

   

   불공정한 경쟁은 결국 사회양극화만 부추길 것이다. 불공정한 경쟁과 실용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공정한 경쟁을 통해 불공정하게 취득한 학벌을 이기며 취업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는 세상이 언제쯤 오려나?” 가슴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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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에 실릴 칼럼입니다.

(1월-새전북) 실용과 경쟁의 차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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