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사랑에 대한 ‘반쪽의 이야기’라는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와. “상대의 그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을 사랑해 본 적 있니?” 이 말을 듣는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교회에서 예배 말미에 원하지 않는 남자의 청혼을 받았다. 아빠는 그 교회의 목사이고 이 남자를 좋아한다. 청혼한 남자는 학교에서 외모로는 최고이고 인기남이지만 속은 텅 빈 얼간이에 가깝다.
얼간이에 가까운 남자가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온유하며...” 라는 성경 구절을 이야기하면서 청혼하는데, 이때 그녀를 짝사랑했던 추추(동양인 여성)가 손을 들어 한 마디 한다. 추추는 그녀가 얼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담대한 거예요. 완벽한 반쪽을 찾는 게 아니고 노력하는 거예요. 손을 내밀고 사랑은 괜찮게 그린 그림을 기꺼이 망칠 수 있는 거예요. 훌륭한 그림을 그릴 기회를 갖기 위해서요.”
사랑에 대한 성경을 한번 꼬아낸 대사지만 그 내용은 같아 보인다. 사랑은 무언가를 바꾸고 교정하는 게 아니다. 그 무엇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것. 그 존재의 모든 것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사르트르가 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의 반사인지도 모른다.

추추가 좋아하는 친구와 온천물에 떠서 이런 말을 중얼거려. “중력은 외로움에 대한 물질의 반응이야.” 그래서 오래 참는 게 성경에 가장 앞에 써 있는 구절이기도 하지. 끊임없이 당기는데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공간이 있는 거거든.
오후에 막내가 학원 간다고 해서 태워서 갔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해서 오랜만에 학원 앞 별다방에서 대화했다. 중3 친구인데 학원 싫다고 하다가 세 달 전부터 고등학생 언니가 학원 문 두드리면서 함께 다니게 됐다.
“너 좋아하는 게 있니?”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아빠도 이 나이 먹어서도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하고 공부하면서 계속해서 찾아가는 것 같아. 아빠는 네가 잘되면 좋겠다. 독립해서 너 혼자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자립도 했으면 해. 그러기 위해서 지금 공부하면서 준비하는 것 같고.” 대학 진학부터 취업,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두서없이 이야기 나누었다. 갑자기 막내가 “동기가 팍팍 되네”라며 씩 웃는다. 시간이 되어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 뒷모습이 괜히 찡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살기.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그 ‘좋아함’을 모른다는 거다. 좋다고 여겨서 잠시 경험하면 안 좋은 게 되기도 하고, 좋다고 생각해서 만났는데 안 좋은 사람인 경우도 있고,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좋은 사람과 일도 있다. 계속해서 변해 간다. 그렇게 살다가 알았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변하지 않는 것을 그대로 존중하고 신뢰하기 위한 엉망진창의 필사적인 ‘노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추추의 이 말은 명언이다. “아름다운 건 전부 결국 모두 망가져. 어쩌면 중요한 건 그거야. 그림을 망가뜨리더라도 그 괜찮은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해. 하지만 대담한 선을 그려 넣지 못한다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영영 모르겠지.”
그 어떤 아름다운 사랑도 항상 망가지고 찌그러지고 흩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랑이라고 칭한다면 다시금 아름답게 그려 넣을 수 있는 담대한 힘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래서 오래 참는 것을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우리 막네처럼 존재만으로 사랑스러운 친구도 있고, 이성이든 동성이든 가슴 설레며 뛰고 좋기만 한 대상도 사랑이지만, 아프고 고통스럽고 지옥 같은 중력을 가져도 기다리고 참을 수 있는 것 또한 사랑이다. 엉망진창이다. 그 엉망진창의 과정을 겪어 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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