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성 대표님께 인사드렸다. 서울에서 일하는 상훈이가 상갓집 한 귀퉁이에 혼자 앉아 소주잔 기울이고 있었다. 시계 보니 12시가 넘어 있다. 대학원 강의 마치고 시간 맞춘다는 게 지금이다. 사는 게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늦은 밤 어린 두 딸의 흐느낌과 지인 몇 분만 있는 조용한 장례식장.
오 대표님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발렌타인 피자집 사장님이다. 달그락 시작하고 지역 봉사 모임에서 알게 됐다. 달그락에서 청소년들과 피자 시키면 꼭 한두 판 더 가져오셔서 아이들 먹게 했다.
어느 날인가 지나다가 생각나서 연락했다며 사무실에 있냐고 전화 주시며 잠시 보자고 하셨다. 급히 사무실 오시더니 요즘 얼굴이 너무 피곤해 보인다시며 이거 좋은 영양제인데 꼭 먹고 다니라고 손에 쥐어 주시고 황급히 나가셨다.
발렌타인에 꿈청지기 선생님들이나 청소년들 피자 먹으러 가면 언제나 밝게 맞아 주시고 뭐든 더 주려고 하셨다. 행사할 때 전체 공간을 내어 주신 적도 있다. 조용히 달그락에 후원하시며 매번 넉넉한 웃음 지어 주신 분. 그 선한 웃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떠나셨다. 나와는 연고가 없으니 돌아가신 것을 알 수가 없었다. 오 대표님 페북에 내일이 발인이라는 글을 봤다. 페북 내려 보는데 글과 사진 몇개 없는데 달그락 안내하는 브로셔가 보인다. 가슴이 더 아린다. 지역에서 조용히 내색하지 않고 여러 봉사를 하신 것으로 안다. 지병이 있는 것을 돌아가신 후 알았다.
나는 언제나 애도가 힘들다. 가슴은 너무 아픈데 내색하지 못한다. 그냥 아리고 아프기만 해. 장례식장 나오는데 상훈이는 오 대표님 한 번 더 보고 오겠다며 들어가는데 나는 자꾸만 창밖에 하늘만 보고 있다. 청소년기부터 달그락 활동했던 상훈이도 서울에서 일을 한다. 사장님 돌아가신 것 알고 바로 내려왔다고 했다.
상훈이 내려 주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한참을 있었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그리고 항상 죽음은 떠난 후에 죽음이 왔다는 것을 안다. 언제나 그랬다. 가시기 전에 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이렇게 죄송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아마 지금쯤 오 대표님은 하늘에서 그 넉넉한 웃음 지으면서 사모님과 두 따님, 그리고 지역에 청소년과 봉사했던 분들의 행복을 기원하고 계실 거다. 그렇게 밝게 웃으면서...
그동안 고마웠어요. 대표님... 언젠가 만나면 제가 영양제와 청소년활동 후원했던 건 꼭 보답할게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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