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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미래신문] 언제나 멋져 주려면

by 달그락달그락 2023. 5. 19.

 

언제나 멋져 줘서 고마워요. 아빠가 일하는 모습 보면 저기 떠 있는 달처럼 언제나 빛나는 것 같아요내가 이런 아빠였다. 어버이날 중학생인 막내가 보낸 편지글이다. 여기까지 좋았는데 우리 딸들이 있으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내 불안과 강박이 아이의 눈에도 보이는지 이런 글이 있었다. 매일 밝고 건강한 모습만 보여 준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 살짝 슬펐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이상한 달빛이 나는 아빠였다. 머리숱 많아서 솎아낼 정도인데 일단 빛이 나는 것으로 하자.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족과 함께해야 하는 달로 정해진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이런 날에 가족과 함께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난 이후 바로 집에 들어앉아서 술을 드시며 시를 쓰겠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집안일과 회사 일에 삼 남매 건사까지 모두 어머니 몫이 되었다. 10대 중반 아버지는 이 땅을 떠나셨다.

 

아버지 떠날 때 나이보다 지금 내 나이가 더 많아져 버린 어버이날이다. SNS 타임라인은 온통 부모님과 가족들이 함께 한 사진과 글이 넘친다. 공감되면서도 가슴 한쪽에서는 부모님과 어떤 이야기를 해야 저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고개를 내민다. 나는 집안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드리고 조용히 자리 지키면서 앉아 있곤 한다.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한 가족관계는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친밀한 대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인정과 신뢰에 대한 끊임없는 표현, 자녀와의 여행과 영화감상 등 어린 시절에만 만날 수 있는 경험이 꼭 필요하다. 일평생 부모와 10대의 자녀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다. 나 어릴 때 부모와의 이런 교감이 적었다. 먹고사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상황과 집안 환경 탓이 크다.

 

그렇다고 내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만나면 살갑게 대하는 방법을 모른다. 어릴 때의 가족문화가 현재 인간관계의 여러 모습을 좌우하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됐다. 우리 아이들과는 계속 장난도 치고 편하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데 어머니와 동생들과는 쉽지 않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또 다른 나와 같은 까칠이를 물려 주고 싶지 않다. 사랑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들에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 그 사랑을 얼굴로 몸으로 표현하면서 더 강화 시키고 싶다.

 

그 가운데 반드시 해야 할 일 한가지는 내 자녀, 내 부모일지라도 나와 다른 또 다른 존재라는 것을 각성하면서 관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많이 화를 대상이 누구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여기는 엄마, 아빠, 자녀, 동생 등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 심리학자, 뇌과학자 들의 해석은 간단하다. 우리 뇌는 멍청해서 나와 가까우면 나인 줄 착각하고 내가 마음대로 통제해도 된다고 여겨서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거다.

 

부모, 자녀 그 누구도 사람은 모두 다른 존재인데 가까울수록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과 더 긍정적인 관계를 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리는 모두 따로이면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가깝고 사랑한다고 여길수록 깊게 관계하되 따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아빠로서 언제나 멋져 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