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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그랬구나'가 최선이라고?

by 달그락달그락 2021. 9. 21.

 

그랬구나.”, “그래서 힘들었구나.” 라는 이 대답이 싫다. 그래서 이후에 뭘 도와주겠다는 건데?”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상담자는 내담자 한사람이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모든 힘겨움을 내가 질 수 없기 때문에 공감은 하되 동정이나 동화되거나 투사하면 안 된다고.

 

사람 마음이 간사해 진다. 그런 공부 하고 나면 내가 뭐가 된 것인 냥 이리저리 재게 된다. 당연하게 여기는 일은 상담자는 절대 모든 일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랬구나"라는 말 몇 마디가 최선이라는 이들.

 

 

청소년 위한다는 마음에 앞뒤 안 보고 덤비면서 청소년의 관계에 깊이 들어 간 경우 있었다. 부모와 싸움 직전까지 가기도 하고 부의 폭력에 화를 낸 적도 있고, 저녁에 술 먹은 아버지에게 전화 받으며 욕설을 들은 기억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랬구나,” 라는 그 대답의 말에 조금이라도 책임지는 마음이 담겨야 한다는 것.

 

적당히 일로서 치부하고 치고 빠지는 기술 익히면서 앞에서는 좋은 사람인 척 훈련된 기법으로 움직이면서 자신은 전문상담자라고 하는 이들. 상담 온 청소년에게 전혀 동화도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싫다. 적당히 상대의 마음을 수용해 주는 정도에서 마치는 일이 해결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정도 일은 수용성 높은 사람들이며 누구나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차라리 상담기술 전혀 없이 아이를 위하고자 최선을 다하며 몸으로 부딪쳐 내는 우리 이웃과 현장 활동가들의 모습이 더 귀하게 보이는 이유다.

 

그럼 상담이 문제인거냐고? 설마. 여기에서 비판 하는 이들은 어설픈 기술 가지고 자신이 무엇이나 된 것인 냥 사업하지만 그것이 청소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관의 실적과 사업 위주로 진행하는 철저히 자신의 직업과 생계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이들을 뜻한다. 청소년의 실질적인 변화는 안 보이고 실적만 넘치는 기관들 보면 고민이 많아진다.

 

좋은 상담자를 만나면서 깊은 교감과 공감을 통해서 치유 받는 청소년들이 있다. 많은 임상경험과 공부, 훈련이 따른 친구들 보면 배우고 싶은 점이 많다. 이런 상담사들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치료받고 치유 받아야 할 청소년들 만나면서 정작 이 친구들을 보낼 만한 상담사가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펴 볼 일이다. 특히 이 글을 읽는 선수들(?) 눈에 혹여 자신의 자녀가 정신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힘겨움이 있을 때 상담 치료 받아야 할 때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보내야 할까? 아는 사람들 눈에는 너무 잘 보이는 이 바닥 현실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자신의 못남과 부족함 그리고 적당히 치고 빠지는 일로서의 상담이나 교육, 활동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힘겹다. 내 부족한 모습도 적나라해 져서 더욱 그렇다.

 

자신이 부족함을 피하고 어설픈 전문성 내세워 그랬구나.” 라는 말은 집어 치울 일이다. 차라리 공감할 수준이 안 되면 깊은 동정이라도 하면서 함께 울어 주고 삶의 공간 안에서 무엇이라도 도움 줄 수 있는 관계에서 힘겨운 청소년들이 살 구멍을 찾기도 한다. 누군가 내 옆에 나를 믿어 주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그것. 그것만으로 사람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대학 강의 나간지가 조금 된다. 2003, 4년 쯤 될 거다. 첫 강의 과목이 상담심리학이었다. 청소년 만나면 기본적인 과목이라고 여기고 어설프게 그 쪽 공부도 아주 조금 했지만 내 부족함만 알게 되었다.

 

시간은 흘렀고 내 꼬라지는 이렇게 변해 갔고 상담은 이전과 같이 하지 않는다. 최근 지인들의 요청으로 어쩌다가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청소년들 생각하면서 내 안의 내 모습이 적나라해지고 고민도 앞선다. 최근에 시간이 있으면 가능하면 진로와 관련된 상담만 하려고 한다.

 

단기적 만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청소년 개인의 문제이기 보다는 주변의 환경적 요인이 커보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찌 할 수 없이 부모 등 관련된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가 요구되어서다.

 

한가위인데 늦은 시간 눈을 떠서 밥 먹고 샤워하고 할 일 때문에 노트북 켰다. 괜히 인터넷 서치 하다가 뭘 읽었는데 어설픈 어떤 청년이 상담기관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고백하기 보다는 피하라는 자신의 상급자 선생의 이야기에 극 공감하면서 자신은 잘 하고 있다는 이상한 논리의 글을 읽다가 왠지 모를 반감이 생겼다. 끄적이고 보니 이런 글이다.

 

추석 쉬는 날 이런 글이나 끄적이고 있다니.. 그래도 연휴가 하루 더 남았다. 하루가...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