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을 꽂고 쫓아오라면 따라가는 이들이 많았다. 사회적 거악(?)이 있을 때 카리스마는 크게 발휘된다. 최근에도 이런 경우 있지만 이전만은 못하다. 무엇을 알고 성찰해서 그럴까? 그저 자신의 위치나 진영논리에 기반한 일들이 많아서다.
많은 영역이 분화되고 있고 신념도 경제도 민주주의도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는 시기다.
깃발을 내가 꽂는 것과 활동의 당사자가 꽂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 된다. 수많은 공공기관에 매년 사업,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계획하는데 이 깃발은 도대체 누가 꽂는 것일까? 실무 담당자? 공무원? 지원받는 당사자?
생각해 보면 누군가는 꽂아 놓은 깃발인데 그 누군가를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저 원래 있던 일이니 진행 되거나 정치적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사업들이 내리 꽂혀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의 교육, 활동, 복지 등 정책 영역에 실제 운영되는 사업들을 보면 매년 깃발은 꽃히는데 도대체 누굴 위한 사업인지 고려하면 복잡해진다.
이 사업은 누가 꽂았나?
누굴 위해 하는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깃발 꽂아 놓았으니 따라가면 되는가?
청소년 사업은 당사자들이 꽂을 수 있도록 돕고 함께 하면서 평가를 실적이 아닌 성과(어떠한 변화)를 중심으로 철저히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누가 꽂았는지도 모르는 깃발을 모두가 쫒아가고 있으며 당사자인 청소년들을 그쪽으로 몰고 간다는 것. 최악이다.
이명박 정권 초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 광화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른들은 깃발에 모여서 나를 따르라면서 단체별 시위하면서 그 안에서 또 그들만의 집단을 이루는 경우가 있었다.
이와 다르게 깃발도 없고 소속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많은 청소년들은 그룹별로 모여서 작은 축제의 장을 펼쳤다. 깃발 든 아저씨가 나를 따르라고 하면 "아저씨나 따르세요"라면서 제기 발랄하게 웃으며 그들만의 축제의 장을 만들며 즐거워했던 모습들.
누가 꽂았는지도 모르는 깃발을 쫒을 일이 아니다. 당사자의 참여와 성과(변화)의 해석은 어찌해야 하는지 돌아볼 일이 많다.
#동원 #대상화 #깃발 #바람에펄럭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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