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구 및 관점/청소년참여

꿈 깨는 참여의 시작, 참정권

by 달그락달그락 2020. 7. 22.

꿈이라고 믿는 망상

청소년에게 재미난 일이 생겼다. 노래, 춤, 게임, 만화, 크리에이터, 작가 등 이전에 경험 하지 못한 즐거운 경험으로 몰입 쩌는 일이다. 주변에서 이런 일을 곧 잘 ‘꿈’이 생겼다고 이야기 한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해석해도 꿈이다. 꿈은 혼자 꾼다. 편안한 잠자리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혼자서 꾼다. 꿈은 현실의 활동으로 ‘깨’는 일이 아닌 ‘꾸’는 일이다.

 

꿈은 무조건 뛰어 드는 거라는 생각에 다른 공부나 경험은 배제하고(이미 학업은 재미없었다) 꿈이라고 믿는 일에 집중한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밌다. 어느 순간 재미가 있는 취미 수준의 일인지 실제 삶을 살아 내야 하는 가치 있는 일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온다.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에서 자신이 철저히 소비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춤과 노래, 게임, 유트브, 웹툰 등으로 돈을 버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자신은 꿈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소비자의 위치에서 여가를 즐겨야 하는 ‘꿈꾸는 일’로 안착된다. 이런 꿈들은 대부분 ‘꾸는 일’이다. 깨어 있지 않고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꿈이라고 믿는 일에 대한 본질과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재미와 즐거움에만 집중할 때 몰입도가 커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시간이 갈수록 그 주변의 재미만 탐닉하는 것을 알게 된다. 주체로서의 역할은 방관한다. 취미나 여가 수준의 꿈이다. 이 일이 진짜 꿈이려면 시간이 가면서 그 일의 가치와 이상, 철학 등 본질에 집중하면서 기술 등 역량이 커져야 한다. 웹툰, 유트브, 게임, 춤 을 좋아서 하는 것과 자신이 주체로 생산해 내는 일의 차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소비자로서 즐기는 일은 가능하나 ‘깨어서 일구는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성찰하면서 위치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갖는 과정을 나는 ‘참여’라고 주장한다.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에 따른 권한을 알고 책임지면서 그 곳의 본질을 이해하고 붙잡으려는 노력은 깨어서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진짜 꿈’이다. ‘참여’는 망상을 깨고 현실에서 진짜 꿈을 일구는 일이다. 청소년활동 현장에서 참여활동이라고 하면서 단순히 민원 수준의 몇 가지 정책을 제안하는 수준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이 참여해야 하는 공간은 집이기도 하고, 직장일 수 있으며, 지역사회와 나라이기도 하고, 지구라는 별이기도 하다. 공간마다 집중해야할 본질이 있다.

 

사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사람을 민주시민이라고 하고, 지구촌에 참여하는 사람은 지구시민이 된다.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으면 민주시민은 참여한다. 촛불을 들고 글을 쓰고 캠페인을 하며 민주주의 관련한 시민단체와 정당 정치 등에 들어가서 활동한다. 민주시민이다. 지구시민은 지구촌의 환경과 여러 문제들에도 참여한다. 직장에 미션과 비전에 따라 자신의 위치에서 집중하며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위해 참여하는 사람이 시민이다. 직장에 좋은 직원이다.

 

청소년참정권의 현실

청소년들은 자신이 삶을 살고 있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 등의 공간에서 시민으로서 참여의 주체이기 보다는 입시의 대상으로만 위치 지어져 왔다. 학교에서 교사이지만 집에 가면 남편, 아내, 딸이기도 하고, 동호회에서는 회원이며 대학원에서는 학생의 위치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공간마다 자신의 위치가 달라지는데 유독 청소년들에게만은 입시 대상으로서 학생이라는 단어만이 자연스럽다.

 

18세 선거권 운동 당시 18세선거권공동행동네트워크 국회 기자회견 중

 

4월15일 우리나라 18세 선거권이 최초로 이루어지는 총선이 지났다. 여론이 분분했다. 학생이 무슨 선거고 정치냐는 거다. 차라리 고등학교시기를 17세에 끝내고 18세에 졸업을 시키는 법을 만들자는 정치인과 단체도 있었다. 학교가 정치의 장으로 변질되어 문제가 많아진다고 주장한다. 웃기는 소리다. 내 보기에 당연히 학교는 정치의 장이 되어야 한다. 정치의 장을 가로 막고 관련 활동도 돕지 않으니 현재 우리의 정치판이 이런 막장 아닌가?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베버는 국가의 운영 또는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라고도 했다. 10대의 청소년도 시민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는 자신의 공간에 동원에 대상이나 방관자가 아닌 주체로서 참여하도록 돕는 일이다. 정치의 주체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 청소년들이 참여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특히 학교는 민주시민이 되도록 참여하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실제적인 학교 일들에는 모두 배제시키고 오로지 입시 대상으로서만 집중하게 하는 문화가 오히려 그들의 삶에 더 큰 장애이며 문제를 일으킨다.

 

이번 총선을 지나오면서 학교에서 합동 연설, 선거 정보 안내, 교사의 중립성 등 여러 논란 때문에 교육이 문제가 있다는 부정적 측면이 부각됐다.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합동연설을 학교에서 왜 고민해야 하나? 어떤 기관은 청소년들에게 선거하는 방법을 교육한다는데? 이것도 코미디다. 대학생들 또한 대부분 선거권을 가지고 있으니 후보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합동유세 연설을 하나? 대기업에 사원들에게 합동유세 한다고 기업에 들어가서 하나? 교사의 중립성 운운하는데 대학 교수들은 중립성이 완전한가? 학원 강사들은?

 

18세 청소년들에게만 유독 학교현장 운운하면서 선거 교육 등 어떻게 해야 한다고 ‘설레발’ 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웃기는 일 아니던가. 그냥 내버려 두면 좋겠다. 청소년들은 입시를 위해 가르치는 대상으로만 알고 있다. 가르치고 지도하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성세대들은 언제 선거교육을 받고 선거를 했나? 자연스럽게 실제 참여하면서 깨닫게 된다. 우선적으로 입시대상으로서 학교의 수동적인 존재로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청소년은 가르침의 대상도 되지만 존중 받아야 할 시민이 요체다. 그들이 관심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참정권은 그들이 삶을 살고 있는 국가라는 조직에서 참여의 시작이다. 당연히 참정권은 기성세대 수준으로 정당 가입 등 실제적인 활동을 가능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꿈 깨고 참여해야 하는 이유

18세 청소년에게 투표권 주는 것을 엄청난 일을 한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참정권은 참여권 안에서 해석해 보아야 한다. 참여 수준이 높은 공간에서의 참정권은 그 만큼의 고민과 성찰 가운데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진다. 공간의 이상에 집중해야 하고 자신의 위치에 따른 권리와 책임을 알아야 한다. 정의와 부정의를 알아가는 기준이 된다. 정의롭지 않고 반인권적인 일이 있을 때 저항 하는 게 참여하는 일이다. 그 어떠한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구이역의 스크린도어 고치는 일을 하던 19세 청소년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사고 초기 회사 측에서 청소년의 과실로 문제를 돌리려고 했으나 결론은 공사의 무리한 외주화로 인해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였고, 사회적 참사였다. 당시 사망한 청소년의 어머니는 기자들을 만나 “아들을 책임감 있게 키운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책임자 지시를 잘 따르면 개죽음만 남습니다. 둘째 아이는 절대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미칠 듯이 후회가 됩니다.” 라고 울부짖다시피 했다.

 

책임감이란 위에서 시키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무조건 교사의 말을 따라야 했고, 직장에서는 상관의 말을 무조건 따르면 좋은 사람이 되고 승진도 한다는 논리다. 만약 김군이 회사의 부조리와 문제에 대해서 저항했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 직장에 선배들 중 한 두 명이라도 상관에 무조건적 복종이 아닌 노동법을 어기는 문제와 안전에 위험이 있으니 제안하고 문제에 저항해야 한다고 안내해 줬으며 어땠을까?

 

무조건 상관의 말에 복종하는 일이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공간에서나 참여한다는 것은 그 최상의 이상과 본질에 집중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권리를 집중하면서 책임지는 일이다. 김 군은 회사에 대한 책임은 너무 크게 졌지만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회사의 본분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프다.

 

참정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의 공간에 기본 단위인 민주주의 국가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권리를 부여 받는 일이다. 나를 대변해서 법을 만들고 정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선출하는 권리다.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고 자신의 권리를 대변하도록 움직이는 가장 기초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위치에서 참여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도 주민으로서 참여해야 한다. 그러한 참여의 주체들이 많아질수록 공간의 시민성은 높아지고 자치하게 된다. 기본적인 원리이며 참정권이 중요한 이유다.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정치 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도와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18세 선거권처럼 실제 하게 하는 것이다. 독일에는 19세 국회의원인 ‘안나 뤼어만’이 있었고, 미국에 뉴욕발라트시에 ‘제이슨 네츠키’라는 19세 시장도 있었다. 최근 아일랜드는 30대 총리가 나왔는데 이 사람은 동성애자 남성이다. 핀란드에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인 ‘카트리쿨무니’는 32세, 내무부 장관인 ‘마리아 오히살로’는 34세 모두 여성이다. 이 분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10대 초부터 정당가입도 하고 관련 정치활동도 꾸준히 해 온 사람들이다. 정치가 젊어지고 나라가 건강해 진다. 대부분 우리가 이야기 하는 선진국의 이야기다. 이 분들과 함께 활동했던 수많은 이들이 모두 정치인이 되지는 않는다. 각자의 일터에서 참여하면서 삶을 살아 갈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10대는 정당가입이 안 된다. 피선거권 연령 제한 기준은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등은 25세, 대통령은 40세 등으로 늦춰져 있다. 자연스러운 정치 사회 참여는 10대 초부터 정당가입도 하고 실질적인 정치, 사회참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학교 내외에서 이런 정치사회 참여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의 발전은 자연스럽다.

 

청소년은 학교 내외에서 민주시민이라는 용어의 개념과 역사를 배우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학교라는 기관의 한 주체로서 참여의 권한이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시민으로서 존중할 때 민주시민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 학교는 정치판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정치사회적 관점에서 시민으로 존중해 주고 그 어느 공간에서건 권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책임은 자연스럽다.

 

꿈을 깨는 이유다. '알린스키'는 권력을 즐김으로서 타락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주변의 세상에서 관심을 두지 않고 개인적 사적 세상에 빠져 사는 것을 인간이 잠든 것으로 비유한다. 깨어 있는 자들은 하나의 세상을 공유하고, 잠든 자들은 각자의 사적인 세상을 갖고 있다(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중)고 강조한다. 깨어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세상의 가치, 이 사회적 관계에서 삶을 살아가는데, 잠든 사람들은 자신의 꿈 안에서 철저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세상으로 들어간다.

 

깨어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공간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인 문제나 자신의 위치에 따른 어떤 고민과 성찰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가진 수많은 진짜 꿈을 갖도록 돕고 이루도록 지원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꿈은 깨어서 현실에 반영해야 진짜 꿈이 된다. 그 꿈의 시작과 과정과 마지막은 그들의 공간에 시민으로서 참여할 때 본질에 이르는 꿈이 된다. 현실이다. 참여권 내의 참정권, 피선거권 등의 모든 일들은 그들의 꿈을 현실로 돕는 일이며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

 

#본고는 의정부시청소년재단에서 발행하는 '청미'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