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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달그락 청소년들이 글을 쓰는 이유

by 달그락달그락 2018. 10. 26.



오전에 주문한 세권의 책이 배달되었습니다. 그 중 무심코 연 김진영 선생님의 유고집 ‘아침의 피아노’의 글 한 줄에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 모든 처음이 다 지나갔음이라." 


최근 김 선생님이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임종 3일전까지 병상에서 메모장에 쓰신 글이 유고집이 되어 아침의 피아노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왜 이리 감흥이 큰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 생명이 꺼지기 전 까지 해야 할 필연적인 일입니다. 


어제는 서울 일정이 있어서 늦은 밤 귀가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청 성베드로대성당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여 하는 화면이 보였습니다.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의 집전으로 열린 미사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는군요. 


미사 가운데에서 나온 말씀 중 제 눈에 박힌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평화는 그렇게 고난 가운데 오는 것이라는 것. 


사람이 나고 살고 죽는 이 사이클을 누구도 거역하거나 저항하지 못합니다. 그 곳에서 오는 아픔과 상처와 힘겨움들 가운데에서 평화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람에 대한 망각. 우리네 삶입니다.  


'평화'는 인간의 삶에서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의 삶에서 고난은 필연이며 필수이고 망각은 자연스러우나 '평화'는 선택이며 노력이고 힘겨움에서 얻는 값진 보물과 같은 삶의 최상위 가치라는 것을 압니다. 


어떤 이는 남북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활동하다가 최근 이 땅을 떠난 분도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의 평화를 위해 아프고 힘겨운 지역에서 삶을 거신 분도 계십니다. 지역사회의 평화를 위해, 청소년, 청년, 환경과 경제의 평화를 위해서 삶을 사시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 이는 자기만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합니다. 


김진영 선생님은 평화를 위해 글을 쓰고 철학을 이야기 하셨던 것 같습니다. 많이 고통스러웠을 텐데 죽임 직전까지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사랑이었습니다. 평화의 본질입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과 평화를 망치고 깨고 흩트리는 사람과의 그 경계 어디 쯤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달그락의 청소년들 중 글을 쓰고 싶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눈맞춤’이라는 청소년자치기구의 10대입니다. 이들이 세 번째 책을 냅니다.  





첫 번째는 잡지형태로 지역의 어르신들을 만나고 인터뷰하여 낸 소책자였습니다. [책 소개 및 과정안내]





두 번째는 ‘NEVER ENDING STORY’라는 제목으로 본받을 만한 친구들을 인터뷰하며 진로에 대해서 고민한 작은 책자였습니다. [책 소개 및 과정 안내] 


이번 세 번째는 ‘일어나기 5분 전’이라는 제목으로 시와 에세이가 함께 하는 관계의 글입니다. 친구들과 학교 이야기, 가족 등 그들이 만나고 경험하는 그 어떤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풀어져 있더군요. [하단에 표지 및 목차 등 소개]


급식실은 우리들이 가장 활기찬 곳이다. 

왜일까  


단순히 열심히 달려가 밝은 표정으로 수저를 들고 

지식이 아닌 밥을 먹는다 

이해하고 말 것도 없이 신나는 표정으로 

즐겁게 이야기하며 먹는다  


급식실이 활기찬 이유는 

어렵게 이해할 것이 없는 장소라서 그런 것 같다. 

다들 밥의 성분을 생각하면서 

먹는 게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급식실’ 이라는 두진휘 청소년의 글입니다. 학생들이 급식실에서 활기찬 이유가 밥의 성분을 생각하면서 먹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글에 멍 했어요. 저는 매번 어떤 해석과 의미를 이야기 하면서 살아야 사람다운 삶을 산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수준에서 어설픈 해석 보다는 어쩌면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그 과정이 너무도 중요해 보입니다. 


우리가 힘들어할 때 

어른들은 종종 말한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지나고 나면 다 별거 아니야 

지나고 나면 다 좋은 추억이야 

지나고 나면 


그래서 어쩌라는걸까 

우리는 지금 

그 힘든 시간 위에 서 있는데 

아직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 이 순간 힘든데 어쩌라는 말이냐는 이경준 청소년의 ‘지나고 나면’이라는 시입니다. 이 친구들에게 배우는 게 많습니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이 너무 아픈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저희 달그락의 10대 청소년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입시를 위해서 또는 취미활동 정도가 아닙니다. 글쓰기 지도를 통해서 문법을 교정하고 몇 가지 경험을 잘 정리하여 논술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는 것은 더욱 더 아닙니다. 


입시문제는 이해를 하겠다만 취미가 아닌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청소년자치활동이 취미활동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단언컨대 취미가 아닙니다. 취미로 책을 내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여가활동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책을 내기는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나 입시에 짓눌린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은 입시의 대상도 아니고 가르치고 관리하고 일방적인 통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이 시대에 시민으로 존재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정리하고 안내한다는 것은 저희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의 평화를 안내하고 노래하는 행위입니다.


청소년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안내하는 것, 그 자체가 청소년들이 만들어 가는 평화의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이번 세 번째 책은 이전의 책과 다르게 ISBN을 교부받아 정식으로 출판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에 실린 청소년들이 작가가 되는 것이지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상당수가 나름의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저와 같은 청소년활동과 연구를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누구나가 청소년기를 겪고 있고 지나 왔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10대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나를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조금 더 살기 좋은 이 세상을 위한 평화가 무엇인지, 이를 위해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의 생태계는 어찌 해야 하는지 조금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하게 

하지만 

조금은 깊게 생각도 하면서 

읽고 나누는 그런 글이 될 것입니다. 


달그락의 청소년들이 글을 쓴다는 것. 그들과 우리 모두를 위해 사랑이 본질인 평화를 일구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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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구입과 안내를 원하시는 분들은 청소년자치연구소(063-465-8871)에 전화 하셔서 송민정 선생님을 찾으세요.


#아래는 이번 책의 표지와 목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