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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예비 청소년지도자 워크숍 (청소년과 청년, 그리고 작은 사회)

by 달그락달그락 2010. 12. 8.

12월2~3일 이틀 동안 예비청소년지도자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한 학기 시간강사로 강의했던 전주 모대학의 학생들이 대상이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부족한 선생의 이야기에 너무 잘 따라와 주었고, 청소년사업에 인생을 걸만한 친구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관의 선생님들이 많은 도움을 주셔서 워크숍을 기획했습니다. 이틀여 동안, 참여한 청년들의 맑고 신선한 도전정신, 청년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내 청년들 바라보며 제 가슴이 '쿵쾅'거림도 느꼈습니다. 마지막 강의 때 이제 선생과 제자가 아닌 같은 목적을 향해 함께 가는 동역자로 만나자 했습니다.

 

워크숍은 청소년들의 실질적인 참여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청소년활동에 참여했던 청소년과 졸업한 청년을 메인 강사로 세워 토론하게 하였고, 현장의 실무지도력들과의 논의를 통해 현장 활동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분임별로 몇 주간 개발한 청소년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저와 함께 저희 기관 실무자분들이 제안과 토론을 함께 했고, 마지막으로 선배 청소년지도자로서 후배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몇 가지 주제에 대해 강의하는 것으로 마쳤습니다.

 

몇 가지 기억나는 부분을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섹션에서, 수년전 고교YMCA 회장이었던 태현이(문팩토리 대표)와 제작년 동아리연합회장(청소년YMCA)이었던 정연이가 '청소년이 청년에게'라는 주제로 예비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습니다. 전에 저와 함께 했던 태현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수년전 아이들과 관계하며 활동했던 모습이 새록합니다.

 

 

 

 

다음은 태현이의 발표가운데 생각 나는 글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서흥중의 미친개였습니다. 그 때부터 마술사가 꿈이었어요. 고교 1년 때 자퇴했고 검정고시 보아서 2년을 벌었죠. 지금까지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서울에서 수년간 활동했고 마술업계에서는 꽤 이름도 날렸습니다. 여러 경험가운데 재미난 내용도 있었으나 어른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우리를 이용하는 행위 때문에 힘겨운 적도 있었습니다. 현재에는 제 이름으로 군산에 회사를 차렸고 졸업한 마술학교(우리나라에 마술을 전공으로 하는 전문대학이 하나밖에 없다고 합니다.)에 겸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까지 될 때까지 고교 때의 청소년활동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그곳은 작은 사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반겨주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건희샘이 멋있었을 때가 있습니다. 저희들을 자주 여러 곳에 데리고 다니시며 대화하셨고, 매 순간마다 무언가 열심히 적고 매 시간 무언가 일을 하고 계셨어요. 그 때 몇 가지 배운 게 있었는데 그것은 메모하는 습관이예요. 아직까지 제가 습관적으로 메모하는 습관은 그 때 생겼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무조건 옹호하고 격려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도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너 하기 싫으면 하지마' 라고 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오기가 생겼어요. 학교는 정말이지 다니기 싫었는데 와이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 오기로 다시 활동 해보고 또 혼나기도 하고 또 와서 다시 하기도 했어요."

 

"저에게 나가라고 세 번 말했었어요. 아직까지도 기억해요" 

 

태연이 말을 듣고 있자니 예전 제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여러 곳의 행사와 회의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차가 없어서 아이들과 기차,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하며 많이도 다녔습니다. 제주도에 캠프가 있어 배타고 오며가며 여러 놀이하며 울고 웃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제가 '나가라'며 화를 낸 기억은 없는데 태연이가 정확히 기억을 하고 있다니 그랬나 봅니다. 몇 년 흐르지 않았지만(7~8년 전 쯤) 그 당시 많이도 지쳐 있을 때였습니다. 저에게는 아이들이 모든 것이었습니다. 매년 동아리연합회의 선거에서 선출하는 연합회장에 태연이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회의나 아이들을 이끌어내는 리더십보다는 자신이 행하고 싶은 마술이나 춤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죠. 당시를 회상하니 30여개가 넘는 동아리 전체를 태현이를 통해서 이끌어내는 것에 많이 힘겨웠나 봅니다. 

 

청소년사업을 행하는 많은 분들이 저를 만나면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옹호하고 격려하고 지지만 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잘못된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가르침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최대한 제가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관계하려 합니다. 초창기 무한책임주의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헛되이 상대에게 힘겨움을 주며, 나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일인 것을 한 참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큰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대한 가능한 만큼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당시에 나라가며 화를 내거나 혼을 낸 경우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억이 거의 없지만 추측컨대 회의상에서 논의하여 결정된 사항을 아무 이유 없이 지키지 않거나 약속을 계속 어겼을 때를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저의 참을성 없음도 한 몫 했을 거예요. 청소년들에게 책임과 권한에 대해 항시 이야기 했습니다. 특히 임원으로 선출된 아이들에게 그 권한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도 아이들과는 이미 신뢰가 기반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더군요. 제가 왜 이렇게 힘들어 하고, 어려워 하는지도 알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잘 하거나, 잘 못한 일들을 이미 알고 있었지요. 말로 해서가 아닌 함께 관계하며 나누었던 여러 일들을 통해 몸과 마음으로 체화되어 졌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합니다.

 

"작은 사회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작은 사회가 있었다는 이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간섭받지 않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공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곳에서 친구들이 있었고, 자신들이 행하고자 하는 일들과 그들을 지지하고 함께 했던 선생(청소년지도자)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기술도 없습니다. 춤, 노래, 악기연주, 그림 등 그 어떤 것도 잘하지 못합니다. 책이나 읽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이들이 좋아했던 락음악이나 안무댄스, 비보이 등은 잘하지도 할 수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단지 아이들을 만난 후 그들이 좋아하기에 덩달아 좋아진 것 뿐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해 봅니다. 즐겨듣지 않지만 개별 동아리들이 주최하는 거의 대부분의 락콘서트에 참여했고, 댄스대회, 공연 등은 먼저 제안하여 진행했고, 비보이에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그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려 노력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도 오해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아이들의 활동에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철저히 아이들의 활동에 개입했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모를 뿐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청소년들이 주도하게 하며 행사가 마치면 아이들은 철저히 자신들이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는 지도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청소년참여 전문가는 이 부분입니다. 철저히 개입(engagement)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 것이지요. 그리고 청소년지도자는 드러나서는 않되겠지요. 가능한 아이들이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연이가 강조했던 "소통이 매우 중요했어요"라는 말이 귀합니다. 정연이는 제작년부터 우리 오성우 팀장님이 멘토로서 함께 했던 아이입니다. 이번에 수능을 치렀습니다. 오팀장님은 저와 다른 귀한 장점이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지지하고 격려하며 수용합니다. 배워야 할 좋은 점입니다. 가끔씩 제가 몇 가지 조언한다지만 아이들의 평안한 관계는 저보다 잘하는 것 같습니다. 

 

'소통'에 대해 더 이상 어떠한 표현을 해야 할까요? 상호 소통, 수평적 소통, 수평적 관계 수 없이 떠들어 주장했었죠. 이를 위해 안전한 관계의 공간이 언제나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고, 이를 위해 공간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서로 간 존중하고 참여하는 수평적 관계의 소통은 아이들을 만나는데 핵심 중에 핵심적 가치라 믿습니다.

 

이후 유희영 사무총장님과 오성우, 유경희, 정훈 팀장님께서 '청년이 청년에게'라는 주제로 강의해 주셨습니다. 모듬별 강의를 듣고 청년들이 그 강의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이 때에 제가 다른 곳에 있어서 네분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저녁 시간 각 분임별 한 달여간 준비한 프로그램 기획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주제는 각 모듬별로 정하라 했습니다. 다만 과정가운데 반드시 기획된 프로그램을 지역의 관련 전문가 분들에게 여쭙고 상의하라 했습니다. 이후 프로그램을 다시 교정해서 대상 청소년들에게 묻고 상의하라고 했습니다. 프로그램 하나씩 발표하고 대략 30여분이 넘는 시간동안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비판적 관점으로 서로간 논의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내용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시온이가 발표한 코스프레 관련 프로그램은 실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천하기까지 했으며 그들을 지원했던 전주의 모기관장의 인터뷰와 참여 청소년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더군요.

 

 

 

 

 

 

 

 

 

 

이 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료증 증정식을 가졌습니다. 과제 가운데 하나인데 학기 초, 마니또를 선정해 주고 한 학기 동안 알지 못하게 상대를 지지하고 격려해 주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에게 하나밖에 없는 수료증을 제작해 주는 것입니다. 조건은 단점 없이 상대의 장점만을 부각해 작성하는 것입니다. 수료증 증정 가운데 울먹이는 아이가 있더군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로간 포옹해 주고 웃고 눈물도 글썽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간단한 다과와 대화 후 잠에 들었습니다. 마치는 시간이 거진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오전 마지막 강의를 했습니다. 청년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6월 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청소년지도자들에게 특강했던 원고를 기반으로 설명했습니다. 가치, 철학, 이념의 설정, 자신이 속한 공간에의 실질적인 참여, 게으름은 죄라는 표현 등 청년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저의 개인적 힘겨움과 현재 청소년활동(복지, 상담, 교육) 현장의 감동과 힘겨움 등을 나누었습니다. 삶에서 자기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인간관계에서 이득이 아닌 가치지향적 본이 되는 삶, 부지런함, 끊임없는 학습, 긍정적인 말 등을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학생들 개개인이 작성했던 과제를 묶어 책으로 만들어 제출했습니다. 그 안에 머리말은 그 동안의 과제를 준비하며 요약한 핵심적 글이었습니다. 평가겸 해서 한학기가 어땠는지 학생들에게 소감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잊지 못하는 아이들의 말이 많습니다. 그 중 제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몇 명의 청년의 글을 옮겨봅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을 좋아해 왔고, 그런 취미를 즐기는 제 모습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공부고 뭐고 다른 것에 전념하지 못하고 오직 이쪽 계열의 일만 쭉 해왔던 터라, 가면 갈수록 이것이 취미인지 직업인지 모른 애모모호한 정신과 불안속에서 한줄기 희망과 자신감과 감도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감히 교수님 덕분이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주일 중에 한번의 강의를 위해 먼 곳에서부터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저희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다가와 주셨습니다. 그 정성어린 마음을 이제는 제가 품고 달려가려고 합니다"

 

"내 자신을 통해 한명의 청소년이라도 삶의 가치를 깨닫고 나름 자신의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면, 나 하나의 존재로 그 친구가 '세상 참 괜찮구나'라는 생각만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그 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혼자서 눈물이 고이기도 하고 가슴이 뛰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너무나 고맙습니다. 부족하고 부족한 시간강사 신분과 많은 준비하지 못해 항시 미안해 했던 제 자신을 돌아 보건데 아이들이 학습하고 참여한 이번 학기는 저에게 잊지 못할 또 하나의 감동과 기쁨을 선물했습니다. 이 청년들을 만나게 된 것, 그 자체만으로 참으로 감사한 학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