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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영화와 책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by 달그락달그락 2008. 2. 4.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건희 (군산시청소년문화의집 관장)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원제: IN HIS STEPS)는 1896년 초판 발행된 찰스M. 쉘돈(Charles M. Sheldon) 목사님의 기독교소설입니다.


찰스M. 쉘돈 목사님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사업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지만 몸소 실직한 인쇄공처럼 가장하여 시가지를 직접 헤매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그런 자신에 대해 냉대와 무관심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충격의 발산으로 자신의 교인들에게 낭독해 주기 “IN HIS STEPS"이 탄생했습니다.


미국의 레이몬드 시라는 곳에서 교회를 담임하는 헨리 멕스웰 목사는 유명 신학교 출신의 엘리트였습니다. 성도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었으며 상류층의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실직한 한 인쇄공의 죽음을 본 후 성직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책을 덮으면서 현재 우리사회의 교회와 너무나도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800년도 후반의 미국 사회일진데 교회 안의 특권의식과 대다수 약자를 돌보지 않고 자신들 안에서 갇혀 생활하는 모습이 적나라했습니다. 그 중 “예수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자신이 걸어왔던 모든 것들을 던지며 실제적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이라면 당연할 진데 그 당연함이 형식적으로 녹아 있는 현재의 우리 사회와 저를 보게 됩니다.


나의 삶은 어떠했는가? 고민하게 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잘 못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낼까?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잘 못한 일들을 더 화내며 문제시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가끔이라도 화를 낼까?

예수님이라면 세상에서 누구나 손가락질하고 자신만을 아는 이기적이 사람일지라도 등을 돌릴까?

예수님이라면 단체의 목적은 배재한 채 자신의 생활만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을 무시하며 등을 돌리려 할까?

예수님이라면 아이들의 주체성을 세워야 한다며 내가 고민하고 공부했던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몰아갈까?

예수님이라면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다며 암묵적으로 나의 성장이 숨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가정도 돌보지 않고 몸을 상해 가며 일을 감당하려 할까?

예수님이라면 어떤 일이건 만들어 내어 자신을 드러내려 할까?

예수님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불편하더라도 하나님께 여쭈어 볼 것입니다.

잘 못을 저질렀더라도 안아 줄 것입니다.

자신만을 아는 이기적인 사람일지라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을 위해 조직을 이용하는 사람일지라도 용서하고 끊임없이 다가가려 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주체성이 성장할 수 있도록 더 큰 사랑을 부어 줄 것입니다.

강요하지 않고 가르치려 하지 않고 오직 삶으로서 보여 줄 것입니다.

가족을 돌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몸이기에 돌 볼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중요한 일을 먼저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우리 시대의 기독교란 보다 더 철저하게 예수님을 본받는 기독교, 특히 고난을 감수하는 기독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p202


오후 내내 예수님을 본받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만난 후 항상 생각했다는 표현일 맞을 것 같습니다.

그 삶은 어쩌면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일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무엇을 도와주었다는 표현은 맞지 않아 보입니다. ‘함께’하며 ‘사랑’ 했습니다. 그리고 약한 자들과 함께 할 제자들을 지도자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최고의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 사회의 교회공동체의 핵심 사명입니다. 다른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안의 가장 고귀한 가치임을 믿습니다.


“약한 자와 함께 하고 지도력을 훈련시킨다” 제 안의 핵심 사명입니다.

그 약한 자란 힘겨운 자, 어려움을 겪는 자, 소외된 자 들이겠지요.

그 약한 자가 저에게는 아동과 청소년이라 불리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지도력은 그들과 함께 할 친구들이죠.

그 지도력들은 동역자들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동역자’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가야할 분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무슨 고난을 당했는가?”p251


개인적으로 많은 고난을 겪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의 한쪽에 저의 욕심이 숨어 있음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욕심 때문에 아픈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인지 나에 의한 고난인지 고민이 앞서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많이 아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아픔과는 다릅니다.

고난 안에 그리스도의 ‘소명’과 ‘가치’가 있다면 아프지만 행복하겠습니다.

그 행복은 세상적 행복과는 다릅니다.

그 때문에 살아갈 힘이 만들어집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어차피 고난의 연속입니다.

다만 그 ‘정점’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가 그 사람의 참다운 생(生)을 결정짓습니다.


아프리카나 이슬람 중국 등으로 선교를 떠나면 추앙은 아니더라도 찬사를 받습니다.

그러한 외국의 훌륭한 선교뿐 아니라 현재 우리 주변의 약한 자 들과의 실제 ‘함께’ 하는 기독교인들도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삶을 살기를 작정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행하는 그 일 가운데 약한 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기를 원합니다. 있는 것 그대로를 조금 더 배려하고 함께 하는 삶을 바랍니다.


항상 희망하며 실천하려 몸부림 칩니다.

“약한 자들과 함께 하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살아가는 지도력이 되며 그 지도력을 성장시키는 삶”

하늘나라 가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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