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식민지 삼은 나라(로마 제국)를 찬양하고, 이스라엘을 침략한 제국의 지도자를 위해 조찬기도회를 열어 기도해 주면서 축복을 빌어 주며, 바리세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추종하면서 시키는 대로 했고, 십자가는커녕 병자, 여자, 어린이, 세리를 무시하고 권력자와 부자들만을 쫓아다니면서 그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해 주고서 그들에게서 부와 명성을 얻고 장수하며 잘 먹고 잘 살았다면, 요즘 내가 가지고 있는 ‘분노’나 ‘화’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다. 신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죄와 거짓,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한다. 당시 유대 사회 상황에서 로마 제국의 식민지 상황이었다. 당연히 민중은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다.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칭하는 바리새인·서기관·대제사장 등은 율법과 전통을 세세하게 규정하며 사람들을 통제했다. 율법을 강조하면서 양심과 자유, 신앙의 본질을 억압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영적 해방은 무엇일까?
3.1운동 당시 선교사들 중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고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린 분들이 있다. 로버트 G.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은 캐나다 출신의 의료 선교사로, 1919년 3·1 운동 당시 만세 시위 주동자들의 집회를 위해 자신의 집을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진료소를 통해 시위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Homer B. Hulbert는 한국의 독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미국인 선교사로, 독립운동을 알리는 대외 활동을 했다. 캐나다 장로교회 소속 Frank W. Schofield 등은 일본의 탄압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잔학 행위에 대해 중립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북장로교 선교사인 프랭크 윌리엄스(Frank W. Williams)는 일본의 탄압을 미국에 알리고, 선교사들과 함께 '외국인 선교사 성명서'를 발표하면서까지 3.1운동을 지지했다. 목숨을 건 행위였다.
이와 다른 행보를 보인 선교사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독립이나 민족에 대한 고려는 없었고,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권리, 역사의식 등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포교활동이 우선이었다. 영혼 구원이 우선이라면서 독립운동을 반대한 자들, 만세운동을 저지한 자들도 많았다.
한국의 정치사회에는 관심 갖지 말고 오직 영혼 구원에 집중하자는 이들이다. Edwin W. Koons는 교인들에게 “일본을 ‘은혜롭고 부드럽게’ 순응하라”며 독립운동보다는 종교적 순종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Arthur Judson Brown(전 미국 장로교 외국선교부 총재)는 한국의 자생적 정치 변화를 신뢰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본의 식민 통치를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본 입장을 밝혔다. “한국 정부는 전적으로 부패했고 내부에서 정치적 갱신의 가능성은 없다”고까지 했다. 이런 문헌을 살피다 보면 자괴감을 넘어 화가 치민다.
1919년 3·1 운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을뿐더러, 운동을 ‘과격’하거나 ‘도발적인 행동’으로 규정하며 자제와 안정을 요구했고, 일본의 '문화정책'(cultivation policy)을 수용한 사례까지 있다.
이화학당의 앨리스 샤프는 3.1 만세운동을 통제하기 위해서 학생 외출과 참여를 차단했고, 세브란스를 설립하고 의료 선교의 선구자로 알려진 에비슨(Oliver R. Avison)도, 윌리엄 스크랜턴(William Scranton)까지도 독립운동이나 사회참여와는 거리를 두고 포교에 집중한 사람들로 알려진다.
“영혼 구원이 우선”이라는 신념 안에 정치나 사회 운동(특히 반일 독립운동)을 세속적 문제로 간주하고, 기독교인은 오직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결국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교회는 나뉘었고, 영혼 구원을 그렇게 주장하던 상당수 목사들은 신사참배까지 강행한다.
미국 다음에 세계 두 번째 선교사를 많이 파견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들은 전 세계의 나라에 들어가서 일제하 우리나라에 왔던 선교사들 중 ‘전자’를 따를까? ‘후자’를 따를까?
곧 8.15다. 광복 이후 세상이 바뀌었나?
지금도 일제강점기에서 그럴 수 있다는 이들이 많다. 6.25 이후 오로지 빨갱이만 때려잡으면 나라 잘 산다고 믿게 했고, 보수 기독교는 그 안에서 똬리를 틀고 영역을 넓혀 왔다. 이승만은 장로였고,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도 그들의 독재정치에 편입해서 대형교회가 된 곳들이 여럿이다. 일본이 우리를 잘 살게 해 주었다는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자들이 기독교인이라면서 정치의 중심이 되고,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 뉴라이트의 선봉이 되었다. 지금 감옥에 있는 대통령은 작년까지도 광복절 경축사를 듣자면 기가 막혔다.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하면서 나라의 정치사회의 올바름, 민주주의, 독립과 같은 가치를 내팽개쳤다. 오직 ‘영혼 구원’한다면서 포교 숫자가 목적이라며 친일하고, 독재를 미화하고, 심지어 독재자를 위해 복을 빌고 기도해 주던 교계 지도자들이라던 이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극우를 양산하는 한 축을 만들어 냈다. 전0훈, 손0보와 같은 괴물을 키웠고, 그들 앞에서 주여 삼창 하면서 떼지어 소리치며 외치는 이들을 양산했다. 끊임없이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있고, 아직도 윤 어게인 외치며 계엄과 내란을 옹호하는 자들, 중국이 국회를 점령했고, 문제 있으면 CIA에 신고하면 된다고 맹신하면서 곧 우리의 큰아버지와 같은 미국의 트럼프가 도와줄 것이라며 울며불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다.
다시 질문,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영적 해방은 무엇일까?”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이 정치적·민족적 자유를 원했다고 보인다. 더 근본적으로 죄와 거짓, 두려움에서 영적인 해방을 원했다. 그 해방은 내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해방의 방법은 무력 투쟁이 아닌 진리, 그의 진리를 알고 따르는 평화적인 방법이다.
온라인(오프에서는 얼마나 조용한지 모른다. 직장에서는 윤 어게인 하지 않는다. 신기하게 온라인에만 들어서면 돌변하는 이들)에서 자신이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면서 온갖 혐오와 배타, 폭력을 조장하는(심지어 지법에 난동을 부리는) 일을 기독교라고 여기는가?
제발 기독교인이여, 우리 모두 정신 차리자. 성경 중에 복음서라도 매일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고, 청년 예수께서 어떤 목소리를 내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들여다보자.
극우적인 신앙관으로 혐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짓은 멈추자. 예수를 ‘닮지’는 못할망정 극우적 망상을 이루고자 ‘이용’하는 짓은 멈추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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