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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박진영 열매들 교회를 비판하기 앞서, 기존 교회가 답해야 할 일

by 달그락달그락 2026. 9. 27.

몇 년 전 고문기술자였던 이근안이 목사 안수를 받고 설교하는 영상을 보다가 화가 나서 몇 번을 멈췄다가 다시 봤다. 이 자에게 왜 목사 안수를 주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다. 내가 화가 났던 부분은 자기 죄를 부정하고 있었고, 자신은 구원받았고, 그 동안 국가를 위해서 최선(고문)을 다했는데도 이렇게 돼서(감옥가고) 억울하다는 뉘앙스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와서다. 이후 그 교단은 교계를 포함 사회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은 후에야 이근안의 목사 안수를 취소한다.

 

서세원이 목사가 되어 아내와 다정하게 출연하는 모습이 CTS 등 기독교 방송에서 많이 나왔던 때가 있었다. 전국의 교회를 다니면서 간증하며 자기 삶이 어떻게 변했고,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한지를 방송과 교회에서 부흥회, 집회를 통해서 전하다가, 그 사건이 터진 후 모든 게 한 번에 잠잠해 졌다.

 

그 외 회심하여 목사 되어 간증하면 돌아 다니다가 사고 친 사람들의 예는 많다. 이 자들에게 그동안 기독교 교리를 가지고 비난하거나 욕한 이들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사진. '첫열매들' 유튜브에서 캡쳐

 

최근 박진영의 ‘첫열매들’이라는 공동체(교회?)에 날선 비난이 많아 보인다. 거의 대부분 개신교계에서 일어나는 비난인데, 그 비난의 이유를 아는 이들이 별로 없다. 교리 문제여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 조차 알지 못하는 교리를 따라서 비판하는 이들 보자면, 실소가 터진다.

 

박진영을 비판하는 이유를 찾아 보니 성경을 시대별로 강하게 나누어 구원 원리를 해석하는 강한 세대주의, 바울서신 13권과 나머지 53권을 구분하고 ‘할례자와 무할례자 복음’을 구별하거나, 현 시대에 한 번 거듭난 사람은 영생을 잃을 수 없다는 구원론 등이다. 이에 왜 중요한지, 얼마나 큰 일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교회를 다니거나 다니지 않거나 이 내용을 알고서 좋다거나 비난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싶다.

 

박진영을 비난하는 이들이 다니는 자기 교회의 구원론을 아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기독교 안에서 구원을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보통 장로교 특히 예장 합동, 고신, 합신 등에서 칼뱅주의를 주장하는데 이는 “내가 아닌 신이 나를 먼저 선택했다”고 본다. 아무리 전도해도 신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구원이 안된다는 논리와 연결된다. 대부분의 장로교 교리다. 알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안은 조금 다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의 대상으로 사랑하고 먼저 은혜를 베푸시며, 인간은 그 은혜와 복음에 믿음으로 응답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고 본다. 복음을 받았을 때 내 선택에 의해 천국 또는 지옥에 갈 수 있다는 논리다. 한국에서는 감리교와 성결교 등이 이 전통에 가깝다.

 

박진영의 성경 해석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삼위일체든 구원론이든 기존 기독교 신학과 다른 주장이라면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따져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기존 교단과 해석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단 같다”,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더 위험해 보인다.

 

성경을 해석해 온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와 다르다”는 낙인이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그 해석이 성경 전체와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차분히 따져 보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무엇을 잘못 믿는가’를 판별하는 장치는 상당히 발전시켜 놓은 것 같은데, 이 조차도 사람들이 잘 알지를 못한다. 문제는 어떤 교리에 따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판별하는 장치는 거의 없는 것만 같다.

 

우리가 요즘 집중해야 할 지점은 ‘유해성’과 ‘열매’가 아닌지. 전통적인 기독교의 핵심 교리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를 묻는 일은 신학자들이 더 잘 볼 것이다.

 

유해성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교회 공동체가 “사람의 존엄과 자유를 훼손하는지, 돈과 권력을 남용하는지, 성폭력, 거짓과 혐오를 확산하는지, 사회와 공동체에 실제 피해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스스로 먼저 던지고 자각해야 할 때다. 교리는 정통이라고 우기는 공동체가 열매 없이 병들어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다.

 

박진영의 교회(공동체?)가 짧은 시간에 천여 명 내외 되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것 같다. 상당수 많은 이들이 젊은이들이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거의 떠나는 상황에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어떠한 열광적인 찬양이나 프로그램이 없이, 1시간 30분 가까운 시간을 매번 성경을 세미나 형태로 설명해 주는 말씀을 듣고, 마친 후 조별 모임까지 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청년 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경의 질문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줘서 좋다는 의견이 강조되어 있었다.

 

기존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많은데, ‘첫열매들’이라는 이 공동체에는 왜 계속해서 청년들이 모여드는지 우리가 스스로 물어야 하지 않을지?

 

과연 우리의 열매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열매’다. 성경에서도 계속해서 강조하고 주장하는 그것. “그래서 열매가 무언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는데, 그 ‘열매’를 내어 놓지 않는다.

 

“당신이 가르치는 복음은 무엇이고, 그 복음을 믿고 가르친 결과, 당신과 당신의 교회에는 어떤 열매가 맺혔는가?” 바로 그 열매를 물어야 한다. 서로를 사랑하는 공동체, 사회에 가장 약한 이들을 돌보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나누고 배려하고 봉사하며 삶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나타나는 열매 말이다.

 

예수께서 오늘 한국교회를 평가한다면 ‘교리를 얼마나 정확하게 정리했는가’만 물을까?, “날 믿고 나서 너희는 도대체 어떤 사람과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냈는지, 내가 만들어 놓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는지, 그 ‘열매’가 무언가?”를 묻지 않을까.

 

박진영과 첫열매들의 성경 해석이 기존 교단의 교리와 얼마나 다른지는 충분히 검증하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기존 교회가 사람을 살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는 어떤 열매를 맺어 왔는지도 같이 물어야 옳다.

 

우리의 기준이 정말 그 선하고 선한 ‘열매’라면, 정통이라는 이름만으로 그 질문을 피할 수는 없다.

 

열매가 맺히지 않는 나무인데, 잎도 무성하고 키도 클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세대다. 그 개체의 생명은 유지되어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기능에는 문제가 생긴다. 현재 개신교의 문제가 바로 이 ‘열매’의 문제로 읽힌다.

 

목사가 아니어도, 신학을 공부했어도, 장로여도, 그렇지 않아도, 평생 교회를 다녔어도 새신자여도, 그들이 그리고 내가 내어 놓는 열매가 무엇인지 볼 일이다.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