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내가 결심한 일은 웃기는 사람 되는 일이었다. 매일 한마디라도 해서 내 주위 사람들을 웃기고 싶었다. 회의나 강의 때에도 아재 개그 조금이라도 섞어 보려고 노력했다. 나름의 성과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번 해 계획은 하루에 한가지씩 내가 좋아하는 일 해 보는 것이다. 10분, 1시간.. 모르겠다.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어찌 됐든 하루에 한가지라도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해 보는 거다. 일상에 직업을 넘어 거의 삶이 되어 버린 내 ‘일’과 책임감으로 해야 하는 ‘활동’ 안에 작은 구멍을 내서 그곳에 잠시라도 들어가 보는 일이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다. 혼자든, 둘이든, 여럿이든.
지난주 3일간 아이들과 여행 마치고 시골집 갔다. 방안에 짧은 시간도 답답해서 인근에 유명하다는 독립서점 찾았다. 온라인에 멋진 책방이라고 했지만 문이 잠기고 거미줄에 먼지까지 거의 망한 것처럼 보여서 근처 문제집 쌓여 있는 서점에 들어갔다. 베스트셀러와 요즘 유행하는 책이 몇 권 있었는데 뒤적거리다가 책을 한 권 찾아 읽었다. 황보름 작가의 <단순 생활자>라는 에세이다. 국수도 아닌데 후루룩 읽다가 많이도 편해졌다. 거실에 큰 테이블 가져다 놓은 것, 산책을 좋아하는 것, 쉼에 대한 고민까지 닮은 점이 너무 많아 좋았다. 그런데 내가 이번 해 계획한 일(내가 좋아하는 일 하기)이 적혀 있었다. 인연은 언제나 신기하기만 하지.
쉬는 날인데 오늘도 일이 많았다. 하루에 한가지는 나 좋은 일 하자고 했지. 밤이 되어 헬스클럽에 갔다. 2, 3주 만이다. 최근 조금 바빴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다시 시작한 반신욕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통화도 했다. 그럼 됐지. 더 필요한 게 있나 싶다.
삶이 바쁘고 혼자이고 싶은 분들은 ‘단순 생활자’ 한번 읽어 보기를. 거기에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도 함께 추천한다. 관련해서 집안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살림지옥 해방일지’라는 책도 함께 읽어 보면 금상첨화다.
아랫글은 ‘단순 생활자’에서 줄 친 글 중 한 부분으로 주제 같아 보여서 옮겨 봄. 곧 봄(?)이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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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걸으며 얘네는 외로울 때 왜 걸을까 생각했다. 외로운데 우리는 왜 다 걸을까. 외로운데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대신 혼자가 될까.
… 나이를 먹다 보니 알게 된 걸까. 외로움은 결국 개인의 몫이라는 걸.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내 안의 외로움을 깨끗이 지워주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나조차 내 안의 외로움을 깨끗이 지우지 못한다는 것 역시 우리는 알고 있는지도. 그래서 걷는 걸까. 외로움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알아가기 위해. 외로움이란 신발 쿠션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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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어야 잘 살게 된다는 걸 언제쯤 알게 되었더라. 잘 못 쉬어 몇 번쯤 삶이 꺾이고 나서 알게 되었겠지. 쉴 새 없이 수많은 걸 배우라고 다그치는 나라에서 쉬는 법 만큼은 절대 알려주지 않았기에, 잘 쉬는 법은 혼자 깨우쳐야 했다. 이렇게 저렇게 쉬어보다가 알게 된 건, 시간이 많다고 잘 쉬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하루 종일 누워 있다고 쉬는 것도 아니었다. 걱정을 한가득 안고 주말 이틀 침대에 누워 있다고 휴식은 아닌 것처럼.
제대로 쉬어보고자 탐구한 끝에 휴식이 무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게 휴식은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 하는 것이었다.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건, 시간 속에 나만 들어가 있는 걸 말한다. 시간 안으로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사회적 시선, 압박,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말들. 지치지 않고 찾아오는 불안, 걱정, 두려움도.
시간이 공이라면 그 안에 나만 존재하는 것이다. 공 안에 들어가 있을 땐 나와 관계 맺은 이들이 아무도 없다는 감각도 필요했다.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떨어져나와 가벼워진 몸과 마음이 되어본다. 나는 혼자이고, 나는 자유롭다고 감각해 본다. 단 한 시간이라도, 단 하루라도 가벼운 상태가 되는 것. 이 상태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하거나 하고 나면 기분 좋은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찾은 휴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