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모일까?

일단 혼자서 정리하지 못하는 문제를 대처하거나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다. 서로가 필요할 때 결집한다. 키세스 시위대가 일주년이 되었고, 윤어게인을 외치는 극우 단체는 법원 앞에 진을 치고 모여 있다.
노동시위 현장에도, 장애인 이동권 문제, 환경문제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정치와 이념, 철학, 자기 소신에 따라 모여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루려고 회합한다.
함께 축하도 한다. 생일, 결혼, 합격 등 사람들은 모여서 축하하고 기념한다. 애도 또한 모여서 한다. 종교는 어떤가? 많이 모일수록 신앙심이 좋다고 여긴다. 심지어 성경에는 “모이기에 힘쓰라”고 쓰여 있다.
기업을 세우는 일도, 같은 미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비영리단체를 만들기도 한다. 모두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모임이다. 이기성을 버리고 조직(모임) 비전에 집중하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 기업도 단체도 좋은 공동체가 된다.
사람은 모여서 살게 되어 있다. 지구라는 별에 모여 있고, 나라와 마을, 그리고 가족 단위로 모여서 존재한다. 그 안에서 학교와 직장, 학원, 식당 등 수많은 공간에 또 모였다가 흩어졌다를 반복한다.
삶의 모든 일이 모임에서 시작되고 모임으로 끝나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존재적이고 태생적인 모임(조직)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 구성원으로서 참여 수준이 높고, 관계의 질이 긍정적이고 깊을 때 좋은 삶은 자연스럽다. 반면 회사나 가족, 마을, 국가라는 단위의 작고 큰 조직에서 관계가 부정적이고 힘겹고, 그곳에 참여하지 못할 때 불행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작든 크든 모임(조직)을 유지하고 사람과 깊게 관계하며 삶을 살아내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운이 좋아서 좋은 부모나 선배, 동료를 만나 자연스럽게 모임을 주도하거나 관계를 즐겁고 의미 있게 가져가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의미 있는 모임은 무엇일까? 내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는 회사는 어떤가? 술모임, 계모임, 등산모임, 독서모임, 식사모임, 게임모임, 교회(성당, 절) 모임, 봉사모임까지 그 목적에 맞는 모임을 얼마나 하는가? 그 모임의 이유(목적, 본질)는 알고 있나? 우리는 월급 받는 일터나 자영업 공간을 제외하고는 적당히 앉아서 있다가 대부분 밥과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지는 않는가?
삶은 관계와 모임의 연속이고, 그 공간에서 서로가 의미 있게 어떻게 참여하는지가 삶을 의미 있게도 하고 무의미하게도 한다. 행복과 불행도 그 안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과 회사를 포함한 내 삶에 의미 있는 모임(조직)이 많을수록 삶은 풍성해진다. 사회도 같다. 긍정적이고 좋은 모임이 많아질 때 건강한 사회 환경이 만들어진다. 윤어게인보다 키세스 시위대가 많아야 하고, 민주시민, 세계시민 모임이 극좌나 극우 모임보다 많아야 한다. 종교도 경전에 따른 삶을 사는 이들이 많을 때 좋은 것이지, 이를 이용만 하고 사람들을 착취 할 때 사이비가 되고 만다.
챗지피티에게 “나의 지난 2025년 1년 동안의 활동을 그림으로 그려 줘”라고 요청했더니 이 그림이 나온다. AI가 알고 있는 내 삶의 상당 부분이 사람들과의 모임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줌(Zoom)까지 포함하면 1년의 대부분을 모임(조직)에서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특히나 달그락 내의 청소년들의 자치기구 모임, 위원회, 이사회, 자원활동가, 후원자, 법인내 실무와 이사그룹까지 수많은 모임이 있다.
이번 해 위원회 등 몇 가지 모임은 개편도 하고 상당히 확장될 것만 같다. 정확한 비전과 목적을 구체화하고, 그 안에서 실질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조직은 반드시 권한과 책임에 따라 움직여져야 한다.
며칠 간 평가회의를 마치고 새해 활동을 계획했다. 모두가 사람을 위해, 사람에 의해, 사람의 참여와 자치로 이루어지도록 기획했다. 그 과정에 의미와 가치, 그리고 서로 간의 ‘정’이 흐르는 관계가 있다.
내가 존재하는 모임(조직)에 이유를 알아가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지구, 나라, 회사, 가정, 책 모임, 공부 모임, 학교, 종교까지 그 수많은 모임과 조직, 관계에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가는 일이 삶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 과정의 끝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지금 이순간에 나를 마주하는 나와, 나를 통해 마주할 수 많은 사람들과의 그 모임과 관계를 온전히 그 순간을 살아 내는 시간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