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및 관점/칼럼

화와 책임 사이

달그락달그락 2025. 12. 18. 00:18

화 날 때가 있다. 모두를 파괴하려는 나쁜 자들에 대한 분노, 쿠데타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한 화다. 다르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혐오하는 자들을 만나도 화가 난다. 계엄령을 내렸던 자를 보면서 분노가 일었고, 그를 추종하며 내가 믿는 종교를 들이미는 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일하면서 화날 때도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약속을 반복적으로 어기거나 계속 같은 문제를 일으킬 때 계속해서 참다가 어느 순간 화가 난다.

 

전자의 화를 내는 대상은 모두를 파괴하려는 악인에 가깝기에 대다수 시민들도 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일터 곧 회사라는 곳에서 화내는 사람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인식된다. 잘못하면 갑질로 신고당하기 딱 좋은 세상이다.

 

 

최근 직장 모습은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을 가르치고 훈계하지 않는다.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도록 조용히 수순을 밟아 간다. 누가 나에게 이런 모습이 요즘 트렌드라고 했다. 내 일터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그가 누군가에게 복이 되기를 원하고, 그 때문에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조용히 대가(?)를 치르도록 권한을 행사한 적이 없다. 권고사직도, 누구를 내보낸 적도 없다. ‘를 내서라도 잘못된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으려고 했었다. 이전의 내 모습이다.

 

이어령 교수가 못 배운 사람의 특징을 화려한 지식이나 스펙이 아니라며, 일상의 태도와 말투, 사고방식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감정적인 태도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고 사고가 뒤따르는 모습, 화내는 모습을 뜻한다.

 

교양은 감정을 조절하는 힘에서 시작되는데, “못 배운 티가 나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금방 분노하거나 감정이 흐르는 대로 말한다고 했다. 내가 화를 낼 때 딱 이 모습이다. 상대 문제를 참다, 참다, 참다가 터져서 화를 내고, 이후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고민이 커진다. 다른 점은 작은 일이 아닌, 계속해서 참다가 터진다는 것. 일단 나는 못 배운 사람 축에 든다.

 

스레드에서 교사를 그만두고 기업에 입사한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가 초등교사일 때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학부모들 민원이 들어오면 책임져야 해서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기업에 입사하고 몇 년 지나고 나니 그런 이상한(?) 책임이 모두 사라지고 내 할 일만 하면 좋다면서 자랑을 나열했다. 그 중 후임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태도가 좋지 않으면 책임지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다고 했다. 직무 관련해서 알려 주어야 할 내용도 감추고, 프로젝트에서 적당히 배제하고, 인사고과 평가할 때 낮은 점수를 주면서 관계를 정리하며 내쫓는다고 했다. 너무 편하다고 했다.

 

어떤 조직이건 그 힘겨움의 실체는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존재에 대한 책임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책임이 커질수록 스트레스는 커진다. 그 책임을 모두 자기에게 가져올 때 어떻게든 수습하고 해결해야 하고, 상대의 문제도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가 된다. 이전의 나는 상대에 대한 가 아닌 나 자신에게 를 내고 있는 거였다.

 

기업, 기관·단체에서 일하는 이들이 어느 수준의 책임을 지려고 할까? 그 책임의 수준이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망하게도 하며 스트레스도 가중시키고 낮출 수도 있다. 책임질 일이 아닌데 어떤 스트레스가 있을까 싶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을 떠올려 봤다. “책임을 크게 지는 사람인가?”, “책임지지 않고 자기 이익만 구하며 사는 사람들인가?”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조금 더 책임을 많이 지는 사람을 존경한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책임지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신뢰는 교양 있는 어떤 태도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외견상 사기꾼도 매너 있는 모습은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다. 삶의 태도와 행동은 기본이고, 상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신뢰를 만든다. 그 애정에 따라 책임도 커지고 변화도 일어난다.

 

내 모습을 돌아보니 웃기는 지점이 많다. 오래전 힘을 내서라도 화를 내면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여겼다. 상대를 사랑하기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잘못을 지적하고 화를 내도 상대나 어떤 공간이 그리 썩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때마나 감정 소모가 컸다. 신뢰가 아닌 오해도 쌓인다.

 

본질적인 변화는 상대보다는 내 안에, 내가 어떻게 고민하고 성찰하며 성장하는지가 관건이다. 무조건 참을 일도 아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진일보한 태도와 방법은 오직 내 안에 있다. 상대를 적절히 그 문제에 직면하게 해야 하고, 책임을 지게 해야 옳다.

 

조직의 리더일 경우 조용히 중심을 잡고 비전을 향해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잔가지 같은 문제들은 적절히 쳐내거나 수정 보완해 가야 한다. 그 때문에 흔들리면 화는 계속해서 더 큰 화를 부른다. 사랑하는 대상이 화를 일으킬 때 화를 내는 일은 삼가는 게 좋다. 합당한 조치를 냉철하게 취하면서 그에 맞추어 교정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그 변화의 과정에 내가 또 감추어져 있다. 교정은 상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책임을 함께 지면서 나도 같이 변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계가 얽혀 있는 조직적인 활동은 언제나 어렵다. 어디서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