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및 관점/칼럼

우리는 무엇을 존경해야 하는가?

달그락달그락 2025. 12. 15. 23:07

가족 중 우와, ○○ 서울대 합격했대

정말?”

대단하다.”

대화 중에 갑자기 끼어들었다. “뭐가 대단한데?”, “수능 공부 잘한 거?”

 

SNS에 의대 합격했다는 글, 서울 상위권 대학 입학했다는 글이 종종 보인다. 칭찬 받을 만하다. 우리 대부분이 입시 공부를 했기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수시, 수능 공부 열심히 했다는 칭찬과 응원이다. , 그 수준에서 응원하고 축하받으면 족하다. 부모들이 자녀의 좋은 대학 입학에 누군가의 존경까지 바랄까? 그러진 않을거다.

 

인스타에 수십만 팔로워가 있는 인플루언서가 책을 썼다면서 홍보 중이다. 들어가 보니 온통 수영복 입은 사진과 영상으로 도배돼 있다. 다이어트 식품 광고도 많다. 책이 곧 나온다는 것만으로 댓글에 찬사가 쏟아진다. 진로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면서 청소년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글의 수준은 성실하면 성공한다수준이다.

 

사람이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다.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 또는 팔로워가 많다는 것만으로 존경받을 수 없다. 수능 성적이 높아야 갈 수 있는 상위 성적을 냈다는 노력은 존중받겠지만,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을 이루었을 때다.

 

조선 말 비상한 두뇌로 신동으로 불릴 만큼 총명했으며, 20대 중반 과거 급제하고, 근대적인 학문과 사상에 빠르게 적응하며 개화파로서 미국 외교관으로 유학까지 한 슈퍼 엘리트가 있었다. 이자가 누군지 아나?

 

70년대 서울대 3학년 재학 중 21살의 나이에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하버드 유학에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했다. 은퇴 후에도 거대 로펌에서 자문으로만 수십억을 번 사람이 있다.

 

지금도 자녀들을 이렇게 키우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 같다만 이 분들 이름 들으면 놀라겠다. 전자는 나라 팔아 먹은 매국노의 대명사가 된 이완용이다. 후자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재판 중인 한덕수 전 총리다. 나는 이완용이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너무 잘 안다. 역사책에 줄줄이 써 있어서다. 반면 한덕수 전 총리가 서울대와 하버드 졸업하고 총리 두 번 한 것을 제외하고 공무원으로서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이루었는지 전혀 떠 오르지 않는다. 현재 재판받고 있는 피의자라는 사실은 정확히 안다.

 

누군가를 추앙하고 존경한다는 것은 그가 삶으로서 이룬 그 어떤 일 때문이다. 순수한 가치와 정신을 살아 낸 사람들이다. 의사라고 모두 존경하지 않는다. 군산에 고 쌍천 이영춘 박사님이 계셨다. 평생을 농촌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돌보았고 예방의학을 위해 헌신한 분이다. 의사들이 존경하는 의사다.

 

수단에서 이태석 신부님 생전 모습

 

종교인도 그렇다. 문익환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분의 평생의 삶 때문이다. 의사이며 신부로서 수단에서 청소년을 위해 젊음을 헌신한 고 이태석 신부님, 평생을 세상의 중심(가장 아픈 곳)에서 삶을 살아 내신 문정현 신부님도 존경한다.

 

검사, 판사라는 이유만으로 존경하지 않는다. 변호사가 되었다고 추앙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직업일지언정 존경과 추앙은 다른 차원이다. 내 머리에 존경이라고 표현되는 법조인은 조영래 변호사님만 떠오른다.

 

내 주변에도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많다. 점심에 전화하신 중국음식점 사장님도 좋은 분이다. 수년간 키다리아저씨 프로젝트로 매달 가정이 어려운 청소년을 후원 해 주신 분이다. 병원장이나 회사업, 공무원 등 자기 직업을 가지고 민간단체나 종교기관에 가치를 붙잡고 활동하는 분들도 있다. 자기 월급을 깎고 후원해서라도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활동가들도 있다.

 

청소년, 청년을 만나면서 그들 자신의 삶을 잘 살아 내는 것도 훌륭한 일이라고 여긴다. 서울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을 갖는 것, 전문직 자격을 취득하는 일 자체가 고되고 힘든 일임을 안다. 그 자체만으로 잘 살고 있다고 응원하고 싶다. 더불어 그 안에서 내 밥벌이도 하지만 그 일의 본질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본질임을 알고 집중해야 옳다. 의사는 생명을 살리고, 과학자는 연구를, 법조인은 정의를, 종교인은 신의 사랑과 평화의 실천 등 우리 모두가 행하는 그 일의 바탕에 이루고자 하는 본질을 추구하며 삶으로서 살아 낼 때 존경과 더 큰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이렇게 끄적이다 보니 내 삶이 비루해 보여 너무나 부끄럽다만, 최소한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는 마음 하나로 또 하루를 버틴다.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살아 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