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과 관계 없는 행복의 이유 : 행복은 사랑순
몇 주 전 중고교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막내가 집에 오더니 “아빵, 나 영어 40점이나 올랐어”라면서 환하게 웃고서는 보여주지도 않던 시험지를 내 손에 쥐어 준다. 3학년이 되고 처음이었다. 나는 “우리 딸 100점 맞았겠네.”라면서 웃었는데 “아닌데, 나 60점인데.”라면서 베시시 웃는다. 살짝 당황했다. 중간고사 영어시험 점수가 20점이었다는 거다. 아이쿠야.. 이제 알았네.
잠시 후 고등학교 다니는 큰 애가 왔다. 거실 큰 탁자에 있었는데 내 앞에 앉더니 시험지 꺼내고서 채점을 시작했다. 계속 동그라미 치더니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이 씨, 하나 틀렸네”라면서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아 보였다. 큰 아이는 시험지도 안 주고 기분 안 좋은 얼굴을 하고 자기 방 들어가서 새벽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다. 막내는 시립도서관 다녀오더니(시험 때는 가줘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두 아이 상황 보고 웃다가 슬펐다. 큰 애는 시험(?) 공부를 좀 하는 것으로 안다. 전교에서도 최상위권이라고 했다. 막내는 언니와 다르게 입시에 관심이 없다. 큰 아이는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와 대학까지도 미리 알아보면서 고민 중이다. 이 때문에 자주 심각했다. 막내는 지난달 카페에서 차 마시며 수다 떨다가 “대학을 가지 않고 공무원 시험을 볼까?”라고 했다. 안정적 직장을 찾고서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거다. 곧 다른 꿈이 생기겠지만 지난달까지는 그랬다.

고등학교 때 가슴 졸이며 봤던 이미연 주연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의 주제가 내 자녀가 청소년일 때까지 이어지고 있다. 학교에서 표면적으로 두들겨 패지만 않을 뿐, 자살률은 높아지고 있고, 행복지수는 전 세계 바닥을 치고 있다. 오히려 현실은 더 각박해진 것만 같다.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아이들이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큰 아이는 늦은 시간까지 끙끙대고 문제 풀다가 갑자기 웃거나 좋아할 때가 있다. 뭔가 풀렸다는 거다. 공부하다가 중간에 기타 치며 노래할 때도 마냥 좋아 보인다. 화장실에서 뮤지컬 노래 켜고 노래 부르며 샤워하고 나왔을 때도 행복해 보인다. 서울에서 뮤지컬 보면서 나에게 공연 에티켓을 상세하게 안내해 줄 때 아이의 미소를 기억한다. 막내는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해도 행복해 보인다.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에 빠져 전시회까지 찾고, 친구들과 영화관 갈 때도 행복해한다. 아이유 콘서트 티켓 어렵게 구해서 공연 기다릴 때의 그 행복한 웃음, 2만원 하는 케이크 앞에서 생일 노래 불러 줄 때 그 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방학이다. 아이들이 자주 가는 학원, 학교, 도서관이나 마을 그 어디에서 매일 행복할 수 없을까? 공부를 하더라도 너무 입시에만 매몰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그 공부 자체만으로 의미를 찾고 즐거워할 수 없을까?
무엇을 배우고 깨닫는다는 것은 희열이고 기쁨인데, 공부 자체를 너무 고통으로만 아는 청소년들 보면 괴롭다. 입시와 사회적 틀이 그렇게 만들었고, 그 책임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청소년활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운동도 하면서 즐거워하면 안 될까?
공부를 해서 성공한다는 것이 서울의 명문대에 가는 것인가? 그럼 행복해할까? 나는 안다. 그렇지 않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27, 8년 이 청소년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알게 됐다. 확신하건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해.
청소년 현장에서 있으면서 청소년 진로와 활동을 도우면서 거꾸로 내 삶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행복이 뭔가? 잘 사는 삶은 뭐지? 뭐 이런 것을 지역사회에 그리다가 민주주의와 시민성, 참여, 자치의 가치는 꽤 깊게 공부했다. 청소년활동 현장에서 핵심 가치라고 믿었기 때문이고 인간이 사회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을 돕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행복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실현을 통한 지속적 만족이라고 했고,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균형, 칸트는 의무를 다한 후의 충만감이라고 했다. 심리학에서 행복은 감정이기도 하고 자기 삶의 만족도이기도 하지.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고, 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유라고도 한다.
이 책 저 책 뒤져 봐도 행복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이라고도 하지만, 그 순간순간 변하는 감정에 매몰되는 것도 지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잡히지 않는 그 행복을 붙잡고자 설정하고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한 가지는 안다. 확신하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것, 나를 통해 그들이 즐겁고 만족해하면서 환한 웃음 지어 보일 때 나는 너무 좋다. 행복이다. 우리 아이들이 웃음 짓고 행복해하는 얼굴 보면 그냥 좋다. 마냥 좋다. 어제 구입한 새 에어컨 하루 종일 켜고 거실 나와서 흐뭇한 웃음 지을 때는 조금 고민이긴 하지만. 전기세가... 아.. 이런.
아무튼 나는 내 사랑하는 이들이 더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살면 좋겠다. 삶의 이유 중 하나다. 행복은 성적이 아닌 사랑순이다.
앗 오늘도 좀 피곤. 두분 선생님들과 회의 비슷한 대화를 이제 마침. 집에 가야징. 울 샘들도 행복하기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