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때 보이는 우선순위
저녁에 익산에서 회의가 있어서 오후 일정 마치고 이동 중이었다. 잠시 병원에 들러야 해서 진료 마치고 급하게 가는데 차가 ‘쿠릉’ 하더니 멈췄다. 계기판에서 엔진오일을 점검하라는 소리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횡단보도였고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서 움직여야 했다. 잠시 당황했다. 비상등 켜니 다행히 뒷차가 빵빵 거리지는 않는다. 시동을 껐다가 다시 걸었다. 다행히 시동이 걸려서 천천히 이동해서 정비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청년기 처음 내 차를 가졌을 때는 정말 생각 없이 몰았다. 차가 가다가 덜덜거리거나 서면 내 차도 주인 닮아서 “너무 힘들면 빌빌 거리는 모양이다”라면서 웃어 넘기는 여유까지 있었다. 중고차 오래 가지 못해서 계속해서 정비받으면서도 청소년들 태우고 전국을 다녔다. 중간에 덜덜거려도 그러려니 살았다.
긴 시간 운전하면서 사고도 두 번 났다. 한 번은 골목에서 차 주차하려는데 스케이트보드 타던 청년이 달려오더니 내 차를 받았다. 보험사 불렀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내가 피해자인데 내 차를 들이받은 청년은 차가 아닌 사람이란 것. 사람과 차가 부디친 거라면서, 그 사람의 치료비를 내가 보험 처리해 주어야 했다. 스케이트보드가 동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억울했지만 법이 그렇다니.
또 한 번은 인천에 강의가 있어서 가고 있는데 뒷범퍼를 봉고차가 받았다. 경찰서 옆이었다. 명함 주는데 형사들이었다. 급히 출동하다가 그랬다면서 미안해했다. 그때 범퍼가 털털거리는데도 인천에 민간단체 선생님들 만나고 새벽에 내려왔다. 용기가 넘쳤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재작년 늦가을 야간에 대학원 강의 마치고 귀가하다가 국도에서 차가 멈췄다. 늦은 밤이었고 비가 왔었던 것 같다. 그 밤은 공포였다. 산속 국도였고 어두웠으며 아무도 없었다. 마침 갓길이 있어서 낑낑대며 옆에 차를 세울 수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큰사고 날 수도 있었다. 렉카차 부르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선 자리가 어딘지 몰라서 보험사에 전화했는데 한참을 헤맸다.
다행히 렉카차가 잘 찾아와 줘서 정비소까지 끌고 갔다. 엔진을 들어 올려야 하고 큰 비용이 든다고 해서 고민했다. 그래도 차 사는 것보다 고치는 게 싸다는 판단에 엔진 들어냈고 돈도 많이 깨졌다. 그때 이후로 차가 조금만 이상하면 바로 정비소 간다.

알수록 무서운 게 삶이다. 경험하지 않고 읽고 본 것만으로 내 감정이나 생각이 정립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우선순위다. 삶에 무엇이 우선순위인지에 대한 고려와 선택. 이 또한 직접 경험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안다. 재작년 사고로 차가 멈춘 날의 기억이 없었으면 나는 오늘도 이전 인천을 갔듯이 털털거리면서도 이 차를 몰고 회의하러 갔을 거다.
어떤 일이 중요한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날이 덥다. 너무 덥다. 웬만하면 에어컨 안 켜고 살았는데 작년에 더위 한 번 먹은 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집 에어컨은 15년도 정도 되었다. 아주 낡았다. 거실에 내 책상 옆 정도만 시원하다. 안방 에어컨 켜면 왠지 공기가 오염되는 느낌이 들 정도여서 안 켜고 산다.
어제오늘 또 덥다. 아침에 내 침대 뒤로 쏟아지는 햇살에 화들짝 놀라서 깬다.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가급적 에어컨도 안 켜고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요즘은 몸 상태 따라 어떻게든 체온 조절하려고 노력 중이다. 늦은 밤에 잠드는데 더위 때문에 일찍 깬다. 지난 여름 하루가 멍할 때 많았다. 에어컨 사서 몸 컨디션 좋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15년 만에 에어컨도 구매했다. 이틀 후 배달 온다.
사람은 경험할수록 담대해지기도 하지만 두려움도 커진다. 경험하고 공부하며, 사람들과 깊게 관계하면서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깨닫고 알아간다.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깨닫는 과정이 성숙이다. 내 부족한 모습 보면서 항상 깨닫는다.
사람이 귀하다.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복이 됐으면 좋겠다. 그 가운데 가까운 이들은 더 귀하다. 나와 조직의 공통분모에 들어 있는 비전에 정합성이 있는 활동이 가치 있다.
삶의 가운데 중요한 게 무엇인지, 우선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 가는 게 성숙의 가늠인지도 모르겠다. 공부, 연구도 모두가 가장 중요한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과정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다가 늙어 죽는 게 우리네 삶인지도 모른다.
오늘 차가 잠깐 멈춘 후 생각이 많았다. 먹을 게 없어서 더위까지 먹었는지 배도 부르고. 좋구만. 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