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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강의란 무엇인가: 평가, 기술, 그리고 본질

달그락달그락 2025. 7. 14. 23:11

지난 학기 강의한 대학에 CQI 보고서 쓰려고 들어가 보니 강의평가 나왔다. ‘4.4이다. 4.5가 만점이니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가다. 강의 수강한 학생들이 평가를 후하게 준 모양이다.

 

10여년 전이다. 모 대학 강의할 때 학생 평가 점수가 100점 만점에 99.8점이었다. 아마도 그 학기 중 내가 그 학교에 가장 높은 강의 평가 받았을 거다. 그런데 다음 해에는 83점인가를 받았다. 충격이었다. 거의 바닥이다. 평점이 낮은 학기는 학생 수가 많아서 열정이 넘쳐 있었다. 그때 막 출판한 책을 시작으로 많은 내용을 넣어서 의욕적으로 강의에 집중했을 때다.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힘이 많이 들어 가면 꼭 그런 사단(?)이 난다.

 

현장 활동하면서 20여 년 넘게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달그락 시작하면서는 대부분 정리하고 한 과목 정도만 시간 될 때 강의하는 수준이다. 수강생들의 강의 평가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어디에서나 그렇다. 청소년지도사, 상담사 등 국가자격 연수부터, 학교 교사, 복지사, 청소년지도자(지도사, 상담사) 등의 보수교육, 다양한 기관단체 특강까지 여러 곳에서 강의해 왔는데 매번 그들에게 부여받는 평가는 고역이자 즐거움이다.

 

 

강의평이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의 주제에 맞는 내용과 실력은 기본이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 말투, 외모, 냄새, 몸짓, 말의 속도, 선물까지 수많은 방법이 있다. 절대로 그 주제(과목)에 따른 실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강의 준비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힘을 주면 줄수록 강의 평은 오히려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주관적인 생각이니 편하게 받아들이길.

 

대학이나 대학원뿐만 아니라, 청소년 대상으로 작게는 2, 30명에서 몇 천 명, 학교 교사와 청소년 관련 기관 단체의 선생님, 청지사, 복지사, 상담사에 학부모까지 오랜 시간 다양한 곳에서 강의하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게 있다.

 

강의 평가 좋기 위해서 절대적인 것은 일단 나를 아는 사람들,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초대해서 간 자리는 무엇을 해도 분위기(평가)가 좋다. 나같이 완전 무명한 사람도 그럴진대 유명인들은 어떤가? 별말 하지 않아도 그냥 나와서 한마디 하는 순간 흥분하고 좋아하기 마련이다. 종교 기관도 비슷하다. 유명 목사나, 신부, 스님 등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들 듣는 종교인들의 얼굴은 존경에 존경이 넘친다.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해도 그 말은 곧 신의 말을 듣는 듯한 태도다.

 

태도 또한 중요해 보인다. 상대를 위한 배려와 웃음, 존중과 같은 수강생에게 적절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더불어 아무리 훌륭한 강사라도 3시간 내외를 말만 할 때 앉아 있는 대상자들은 지치기 마련이다. 영상, 사진 등 주제와 연결되는 콘텐츠를 적절히 준비해 가는 게 좋다. 연결해서 작은 선물을 가져가서 질문에 답하거나 분위기 좋게 하는 사람에게 드리는 것도 분위기 쇄신에 좋은 방법이다. 어떤 강사를 만났는데 두 시간여 모든 참여자들에게 선물을 나누는 분까지 있었다. 강의 내용을 떠나 이 분의 강의 평 어떨지는 답 나온다.

 

이런 기술적인 내용이 없어도 강의평이 좋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설명한 강의 잘하는 법과 다르게 말투도 거칠고 태도도 엉성하고, 선물도 없고, 영상 등 관련 콘텐츠가 부족하거나 없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피피티도 없다. 보드마커 검은색 하나 들고 몇 시간을 떠들기도 한다. 그래도 존중 받을 때 많다. 그 안에 깊은 공부와 성찰, 현장에 가슴 저리게 살아 있는 경험이 있으면 족하다. 전문 강사직이 아닌 나처럼 현장 활동하면서 움직이는 이들은 특히나 더 중요해 보인다.

 

강의 잘하는 방법을 조금은 안다. 하지만 위에 나열한 태도와 기술, 유명세 등에 얹혀 갈 생각이 없다. 물론 나 또한 이전에 비해서 말투와 태도, 강의 스킬 등은 정말 많이 변했다. 최대한 사람들의 상황을 파악해서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도 한다. 질문은 전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바꾸어서 상대의 부담을 덜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도 한다. 어찌 됐건 사람은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런 기술적인 내용을 넘어서(부족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의 본질이다. 이전에 3년 넘게 프리랜서 하면서 깨달은 내용도 같다. 내용을 깨닫고 깊게 성찰하면서 상대를 진정 어린 마음으로 무언가 나누고 싶어서 안달하는 그 마음을 붙잡는 일이다. 그 안에는 현장에 당사자와 어떤 변화에 대한 노력의 갈급함이 녹아 있다. 그것을 붙잡는 것. 기술 이전에 가장 중요해 보인다.

 

어느 순간부터 강의 평에 대해서 좌고우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전제가 있다. “최선을 다했는가?”에 대한 내 안의 질문이다.

 

강의하면서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은 나다. 내가 가장 많이 닦이고 갈리고 조율되면서 변해 갔다. 그래서 나의 가장 큰 스승은 나의 제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현장에서 만난 선후배와 당사자인 청소년들이다. 연구한 내용, 현장의 경험에서 오는 여러 고민까지 그들이 가장 큰 배움을 준 사람들이다.

 

현장에서 선후배들 만나면서도 관련 내용 연결해서 토론하고 설명하고 관련 이론서도 계속 쓰고 있다.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결국 그 바탕은 내가 살아가는 삶과 현장에 있다. 이론과 연구도 도움을 준다. 삶의 시간이 거의 녹아 있는 살아 움직이는 내 현장에 청소년과 청년, 선후배 동료와 이웃, , 후원자 등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관계와 삶이다. 매 순간 그 안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

 

강의나 교육은 결국 입으로 나오는 어떤 행위에 연결된 이다. 이 공부한 내용을 깊게 성찰하지 않고, 현장의 활동이 삶으로서 이어지지 않을 때 쓸데없는 횡설수설이 되고 만다. 강의(교육)를 한다면서 말만 많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어느 순간 모든 행위는 결국 내 안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강의도 교육의 과정에 나오는 모든 말과 행위는 기술이 아닌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삶의 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현장에서 나오는 어떤 관계의 말로 이어지는 또 다른 현장의 삶.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