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참사 11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기억이 세상을 바꾼다고.
4.16이다. 나는 오늘도 문서를 읽고 결제를 했다. 선생님들과 대화도 했고 미얀마 청년 지원을 위한 짧은 후원 요청 메시지도 써서 보냈다. 저녁에는 연구소 위원회가 있어서 참여했다. 지난해 출판사 계약한 책 때문에 이 밤에도 글을 끄적이고 있다. 꾸준히 해야 했는데 이제야 쓰려고 한다. 5월까지 초고 보내야 하는데 진도가 안 나가.

오전에 출근하면서 오랜만에 작업복(?) 꺼냈다. 넥타이 매는 옷이다. 언제부터인가 작업복(넥타이 매는 옷) 대신 캐주얼하게 주워 입고 다녔지만, 오늘은 넥타이 매고 싶었다. 밥도 먹었다. 길위의청년학교에서 김 선생님과 점심밥을 먹었고, 저녁은 연구소 위원님 몇 분과 회의하면서 식사했다. 차 마시며 대화했고 신규 위원님들 계셔서 은파호수공원을 잠시 산책도 했다.

쓰다 보니 사는 것은 먹고, 대화하고, 뭘 보고 움직여 가면서 행하는 일로 보인다. 삶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러다가 우리는 모두 죽는다.
2014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개인 연구소 운영하며 프리랜서 3년을 넘어서면서 달그락 활동 준비할 때다. 내적 고민이 심했고 전국 연대하는 일도 많았다. 2013년 7월에 일어난 태안해병대 캠프 참사 사건으로 5명의 학생이 사망했고, 이후 청소년활동과 관련된 안전 정책이 논란이 되며 박근혜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이상한 짓을 많이 하던 때다.
사망한 학생 부모님 만나서 그분의 힘겨움을 듣게 되었고 활동은 더 깊어질 때다. 관련 부처에서 안정 정책을 관리 통제적으로 이상하게 판을 짜고 있었다. 전국 청소년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과 네트워크 만들어 활동했다. 국회 드나들며 안전정책 토론회 열고 여가부에 정책 제안하면서 피곤에 쩔어 연대 활동 이어가던 때, 세월호 참사가 났다. 큰 충격이었다. 트라우마 비슷한 것도 생겼고, 또 다른 일들이 넘칠 때다. 그 시간을 부딪치면서 <청소년자치연구소>와 함께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의 문을 연다.
달그락도 10년이 되었다. 지난해 12월 10주년 기념식도 하고 새로운 비전도 선포했다. 청소년을 중심으로 함께 하는 이들과 어떻게든 달그락은 달그락거리기 위해서 행동한다.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아니... 기억해야 살 수 있다. 이후에도 현장에서 사회적 안전을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이 있었나? 그럼에도 이태원 참사 등 계속해서 힘겨운 일은 발생했다. 정치 사회적 불안감은 더 커졌다. 민주주의는 점차 진보하며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상하게 모든 일이 퇴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 현장에 더욱 천착하며 집중해야 할 일들이 보인다.
잘 산다는 것? 아직도 잘 모르지만, 어렴풋이 무언가 보이기도 한다. 내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말로만이 아닌 사람들과 실제 살을 부딪치면서 연대하며 청소년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 그 안에서 진실이 녹아 있어야 한다. 어쩌면 그게 모두인지도 모른다. 청소년을 중심에 두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이다.

4.16.. 11년째다. 지역에 세월호 연대행사는 이번 주 토요일에 한다. 작은 식전 행사에 달그락 청소년들도 참여한다. 청소년들은 한 달여 캠페인과 방송, 세월호 기억 물품 제작 안내 등 여러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사이에 또 달그락 과 관계하고 있는 미얀마에 지진으로 피해 입은 청(소)년들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물품 후원행사 등 여러 일들이 복합적으로 만들어져 추진 중이다.
한 사람의 급진적인 활동과 헌신도 중요하다. 변화를 일군다. 하지만 내 보기에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하는 과정은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같이 움직일 때다. 신념, 종교, 정치색, 피부색이나 지역이 다른 이들이 조금은 이상적이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말과 기억은 이러한 현장의 움직임에 있다. 내 사는 현장의 활동 방향이다.
세월호 11주기,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이 말은 삶의 바탕인 우리 현장의 움직임에 있다. 기억은 곧 움직임이고 변화다.
또 다른 세월호가 지나가고 있다.